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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Nov 15. 2023

'파과' 그리고 '파쇄'_구병모

모든 것의 종착지는 소멸이기에, 오래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파과> 그리고 <파쇄> 위픽시리즈도 궁금했고, 구병모 작가님 소설도 궁금했고, 게다가 그 내용이 킬러의 이야기라니 더 궁금했던. 드디어 읽어보았다.

 <파과>는 초반에 고비가 몇 번 있었으나 글을 쓰며 곱씹을수록 더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완독 하기 잘했다고 느껴지는 책. <파쇄>는 짧은 스핀오프 작품인데, <파과>에서 '류'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들었다면 꼭 읽어보시길.








1. 이야기


<파과>

 조각은 베테랑 노인 여성 방역업자이다. 방역이란 의뢰를 받아 누군가에게 벌레 같은 존재를 없애버리는 일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과 같지 않은 그의 신경을 긁는 이가 나타난다. 젊은 남성 방역업자 투우.

 투우는 조각과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는데 매번 시비를 걸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일까지 방해하기 시작한다. 조각은 대체 이 아이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 것인지 전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

 반면 투우는 조각이 누군지 알고 있다. 그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다. 그를 다시 만난 이후 모종의 이유로 조각에게 집착한다.


 조각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생명을 거두는 일이기에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살아있는 생명인 개를 한 마리 데려오게 된다. 그 개에게 '무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서는 매일 단속하던 문을 무용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열어두고, 집을 나설 땐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한다.


 시장에서는 화목한 조손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부러운 감정을 느끼고, 방역 일을 하다가도 '보통 사람'처럼 소모적이고 인간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투우는 그런 조각을 보고 분노가 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파쇄_일단 마음먹고 칼을 집었으면 뜸 들이지 마>

 오갈 곳 없는 조각을 거둬들여 킬러로 다시 태어나도록 훈련시킨 '류'.

류와 조각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스핀오프.




2. 생각하기


1)

 킬러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니 너무 궁금해서 집어 들게 된 책.

 작가님 특유의 문체인지, 주인공이 나이가 든 노인이기에 그런 것인지 서술이 길고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이 꽤 자주 사용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처음 읽는 동안은 조금 불편했지만 조금 적응된 후부터는 재미있었다.

(그 영향으로 다음 책부터는 낱말 수집을 해보고 싶어졌다. 노트 하나 사면 또 까먹고 귀찮아서 미루진 않으려나... 브런치 글 쓰는 것도 미루지 않기가 어렵다 하하.)


  지금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책을 읽으며 투우가 조각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복수심인가 싶었으나, 조각이 감정적으로 무뎌지고 약해진 모습(과거와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분노하는 것을 보니 그 분노의 이유가 단순한 복수심은 아닌 듯했다.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자란 투우에게 조각의 무심한 보살핌은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같다.

 결핍에서 오는 집착. 어쩌면 그 속에는 삐뚤어진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아 겉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속으로는 어린아이인 투우.

 투우와 조각이 함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애틋하기도 했다. 투우는 후련해 보였다. 여러 감정이 얽히고설켜 도저히 알 수 없는 마음이라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조각의 집에 있던 오래된 냉장고. 부품이 단종되었고, 고장 났고, 교체가 필요한 그런 오래된 물건. 조각을 비유하는 표현이었다. 조각이 데려와 키우고 있는 노견 무용을 비유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 그 말이 이런 말이었나 보다.

 조각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오래된 것들에 대한, 언젠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는 것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은 낡는다. 닳는다. 사라진다. 영원한 것은 없다. 빛나는 순간은 길지 않다.

 그것이 현재를 충분히 느끼며 살아야 할 이유를, 모든 오래된 것들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필요를 알려준다.

 결국 모든 것들이 도달할 마지막 목적지는 소멸이기에.



2)

 스핀오프 격인 <파쇄>를 읽으며 '류'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는 조각에게 어떤 어른이었을까.


 훈련을 진행하며 조각은 그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쓰고 버려질 물건처럼 대한다고.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류가 조각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제금 네가 어리고 환경상 어쩔 수 없이 내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내가 너를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하는 어른은 좋은 어른이 아닌가?

 혼낼 것은 혼내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칭찬할 것은 칭찬해 주는 어른이자 선배. 이 것만 보면 정말 인간적이고 좋은 어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방역' 즉, 사람을 죽인다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존재한다.

어린 조각을 방역업자로 끌어들이며 '쓸만하다.'라고 판단한 그를, 과연 좋은 어른이라 볼 수 있는가? 아직 어린 조각에게 다른 길을 찾아볼 기회조차 없게 만들었으니. 그저 쓸모로 판단했으니. 나쁜 어른이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고,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조각에게 류는 어떤 어른이고 어떤 동료이자 어떤 선배였을까.


 작가님은 <파과>가 여성의 이야기여서 더 주목받기 시작한 지금, 조각의 이야기가 '진정한' 여성서사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결격사유로 인해 그렇지 않다는 감별을 받았다고. 그러나 작가님은 이렇듯 그녀가 완벽하지 않아서, 건강하지 않은 사고와 유해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좋다고 하셨다. 완전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모습. 짧지만 너무도 강렬한 말이었다.

 <파쇄>를 읽게 되어 이 작가의 말까지 읽을 수 있었기에 정말 다행이다. 작가님께서 결격을 안은 쓰기를 계속해주신 덕에 그 인물들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




3. 물음표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오래된 것을 보면 어떤 감정들이 느껴지는가?


오래된 것들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오래된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뿐인 것처럼. 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향한 대상화.
 지금 마음속에 피어오른 희미한 태동 같은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했기 때문에 생겨난 작은 흥분에 불과하며, 거기 몸을 깊이 담그지 못하고 발만 살짝 적셨다가 돌아 나오는 데서 비롯한 아쉬움의 반영일 뿐이다.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에."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
 버릇없어 보이지만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그 아이가 부럽다고 생각하며.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파과>
생각은 매 순간 해야 하지만, 생각에 빠지면 죽어.
"지금 네가 어리고 환경상 어쩔 수 없이 내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내가 너를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파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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