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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Oct 11. 2023

가녀장의 시대_이슬아

가부장 안녕, 이젠 가녀장의 시대?



 가부장의 시대는 가고, 가녀장의 시대가 왔다. 책을 본격적으로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출판사별로 북클럽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문학동네 북클럽을 신청했었다. 북클럽을 신청하면 웰컴키트와 함께 책과 관련된 정보나 강연 등을 소개해주고 원하는 책을 두권 고를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하던 중 표지와 책 소개가 재미있어 보여 일단 고르고 본 책이 바로 이 책 <가녀장의 시대>이다. 마침 이 책이 드라마로도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애초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책이라고...! 요즘 재미있게 읽은 작품들이 영상화되는 것에 기대가 크다. (안전가옥 쇼트에 수록되었던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도 단막극으로 나온다 해서 기대 중)







1. 이야기

 주인공 슬아는 집안의 가부장이었던 할아버지를 많이 닮은 손녀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예쁨을 받으며 컸지만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는 것들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제사음식 준비는 모두 엄마가 하는데 정작 제사를 지낼 때는 왜 빠져있어야만 하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슬아네가 분가를 하고 시간이 흘러 슬아는 글을 쓰고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출판사인 '낮잠출판사'를 운영하게 되고, 웅이 씨와 복희 씨를 부모가 아니라 모부라 칭하며 그들을 직원으로 고용한다. 그렇게 <가녀장의 시대>가 열렸다.


  근무시간에는 슬아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여기서 모부의 주된 일은 요리와 청소 같은 집안일이다.  

 모부에서 모를 담당하는 복희 씨는 요리에 재능이 있어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그 일에 보람을 느낀다. 더불어 이메일 답신 보내기 등의 잡다한 업무도 보조한다. 

 모부에서 부를 담당하는 웅이 씨는 청소에 재능이 있으며 복희 씨가 떨어뜨린 과자부스러기를 매우 싫어한다.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 슬아에게 필요한 가구를 만들거나 슬아가 출장이 있을 때 그를 데려다 주기 위해 운전도 한다.

 모부는 슬아가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라고 소곤거리기는 하지만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월급 외의 특별수당도 존재한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받는 기본적인 수당에 더해 직원 간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의미의 MT수당, 슬아가 매일 먹는 된장찌개를 위한 된장 만들기 출장을 다녀올 때 주는 된장 수당, 같은 의미에서의 김장수당 등.


 이 이야기는 가녀장제의 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이야기이다.




2. 생각하기 

 재밌을 것 같아서 고민 없이 구매했을 때와는 달리 막상 표지를 넘기기 전까지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혹시 지금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내용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이면 어쩌지? 신랄하게 가부장제를 비판하기만 하는 그런 책이면 읽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러나 내용은 생각보다, 아니 그냥 작품 자체가 매우 유쾌했다. 그저 '가녀장'이 집안의 가장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겪고 있는 일상을 담아낸 에피소드 형식의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가족은 정말 판타지 속의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기에, 가까운 사이이기에 지키기 어려운 선들을 주인공들은 정말 잘 지켜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슬아는 복희 씨의 요리에 대체 불가능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 급여도 많이 주고 된장 수당, 김장 수당 등 수당까지 다 챙겨주면서도 '밥 좀 늦게 먹는다고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며 할아버지의 모습 중 가장 물려받기 싫었던 부분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무작정 가부장제가 문제야!라고 하지 않고 어떤 부분은 배울만한 부분인지 반대로 어떤 부분은 이제 끊어내야 하는 부분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만 여기던 집안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것을 노동으로 인정해 돈을 준다는 점도 신선하고 좋았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를 가정부처럼 대한다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있었으나 그 자체가 가사노동에 대한 편견에서 온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고 읽기 시작했다. 


 인상 깊었던 순간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첫 번째는 슬아의 집에 레즈비언 부부가 놀러 왔을 때이다. 복희 씨는 그들과 대화하며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그 혼란스러움은 기분 좋은 혼란으로 표현된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기분 좋은 흔들림. 복희 씨가 정말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웅이 씨의 타자되기 수련이다. 웅이 씨가 과거 수영을 가르치던 시절 다리가 없는 사람, 한쪽 팔이 없는 사람에게 적합한 영법을 찾아내기 위해 그 사람이 되어보려 다리를, 팔을 묶고 직접 그 사람이 되었고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 존중이 중요하다고 매번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고정관념 속에 갇혀있는 상태라고 느낀다. 나 역시 복희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기분 좋은 혼란보다는 '왜 저 사람들을 위해 내가 흔들려야 해?' 하는 방어적인 마음이 들 때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가끔 무지에서 오는 실수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서 가녀장인 슬아보다 그가 가녀장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게 조력해 주는 복희 씨와 웅이 씨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3. 물음표

식당에서 '이모'라는 호칭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는 무엇이 있을까?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좋은 것만을 반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반복하지 않을 힘도 있다. 
"누굴 얼마나 만나봐야 진짜 충분하다고 느낄까." 복희는 그런 충분함 같은 건 영원히 없다고 말하려다가 만다. 슬아의 앞날엔 아직도 무수한 데이트가 남아 있을 테니까.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신중해야 한다. 그게 어디에서 얼마나 반복되고 복제될지 상상하면서, 나쁜 것을 대량생산하지 않기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 
"근데 흔들리니까 좋지, 엄마?" "응. 뭔가 막 배우는 기분."
웅이에게 소설은 거짓말 모음집 같은 것이다. 거짓말들을 모아 진실을 가리키는 장르가 소설이니 말이다.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 잘해보기 위해서라고. 다시 잘해볼 기회를 주려고 월요일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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