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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물 Sep 03. 2024

두 번째 장기요양보험 신청하기

친정엄마는 나름대로 엄마만의 생활루틴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TV를 보며 지내셨다. 어르신들에게 TV가 무료함을 달래주는 친구 같은 존재기도 하지만 친정엄마는 하루종일 TV를 틀어놓다시피 하니 어느 날은 TV에 출연한 배우나 뉴스앵커가 본인에게 말을 건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데이케어센터를 신청해 다녀보자 했지만 극구 반대하셨다. 그 무렵 엄마의 망상증상은 조금씩 심해졌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친정엄마에게 한 번만 다녀보고 영 아니면 그만두자고 했다. 엄마는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허락하셨다. 며칠 지나면 마음이 바뀔 것 같아 그날 곧바로 신청했다.


예전에는 건강보험 지역지사에 직접 찾아가서 서류를 작성했었는데 요즘은 건강보험앱에 들어가면 장기요양보험을 보호자가 대리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엄마의 인적사항을 적고 신청하고 나서 조회해 보니 이전에 신청했던 이력까지 나왔다. 2008년 12월 12일 신청인 000.  친정아버지의 신청내역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16년 만에 이걸 다시 신청하게 될 줄 몰랐다.


당시 친정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다. 진단받고 처음 2~3년은 엄마가 아버지를 돌보셨다.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쉬는 날 간간히 돌봐드렸지만 체구도 크시고 점점 거동이 어려워지시니 주간병인이었던 엄마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 해 나는 휴직을 하고 한 해동안 아빠를 돌봐드렸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친정아버지의 상태는 집에서 돌보기는 버겁지만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늘 그렇듯 주치의는 석 달에 한번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한 번에 한 움큼씩 먹어야 하는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매일매일 몸이 불편한 환자의 식사를 챙기며 운동시키고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가족들의 몫이었다.


개인 간병인을 쓸 수는 있지만 집으로 오려고 하는 간병인은 별로 없는 데다 온다고 해도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마침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되었다. 뉴스에서 얼핏 보았던 게 생각나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했더니 친정아버지가 해당이 된다고 신청해서 심사를 받으라 하셨다. 심사결과 아버지는 3등급을 받으셨고 매일 요양보호사가 4시간씩 집으로 방문해 아버지의 간호를 도왔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볼 일도 보시고 목욕탕도 가셨다.  4시간이 길진 않지만 365일 환자에게 매여있는 주간병인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시간이었다. 장기요양보험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었지만 나름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요양보험을 신청하고 열흘 후에 친정엄마는 면접관과 만났다.  일부러 더 아프다고 연기를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프고 불편한 증상을 숨길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친정엄마는 본인이 일상생활하는데 전혀 문제없다고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대체 이건 무슨 마음일까? 주위에서 들어보면 어르신들께서 등급을 잘 받고 싶어서 일부러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않는 분들도 계시고 못 걷는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던데… 엄마와의 면담이 끝나고 집을 나와 면접관에게 따로 엄마의 증상에 대해 말씀드렸고 엄마는 6등급인 인지지원등급을 받으셨다.

원래 요양등급은 5등급인데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나 치매로 인해 인지에 문제가 생긴 어르신들이 많아져 6등급이 추가로 신설되었다고 한다. 인지지원등급은 요양보호사지원은 안되고 데이케어센터를 주 3회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등급을 받자마자 가까운 데이케어센터에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20분 거리에 있는 데이케어센터에 자리가 있었고 엄마와 방문해 상담을 했다. 친정아버지도 데이케어센터에 몇 번 다니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초기단계여서  데이케어센터가 그리 체계적이지  않았고 아버지는 별로 탐탁지 않아 하셔서 그만두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나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방문했는데 의외로 엄마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와 방문한 데이케어센터가 크진 않았지만 아담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그런지 엄마가 흔쾌히 다녀보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데이케어센터를 둘러보고 친정엄마가 어르신들의 체조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사회복지사와 면담을 했다. 엄마가 오케이 했기 때문에 바로 신청서를 쓰기로 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인하는데만 30분쯤 걸린 것 같다. 구립데이케어센터여서 그런지 서류가 많았지만 오히려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사회복지사로부터 센터에 제출해야 할 건강검진서류와 준비물 그리고 주의사항들을 듣고 준비물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챙겨야 할 준비물이라고 준 종이에 실내화, 갈아입을 여벌 옷과 속옷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는데 갑자기 아이를 처음 유치원에 보내던 날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며 조마조마했던 그때의 마음이 이젠 엄마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어만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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