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살구
복숭아를 좋아하지만 남이 까주지 않으면 못 먹는다. 씨앗 때문이다. 씨앗을 대체 어떻게 발라내는지 모르겠다. 물복보다 딱복을 좋아하기도 하고 천도복숭아 씨앗이 깨끗하게 쏙 빠지는 걸 본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어서, 여름이라고 너도 나도 올리는 복숭아 사진 물결에 편승하여 천도복숭아를 사봤다. 껍질을 까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긴 했다. 그러나, 안된다, 씨가 안 발려진다 으아아아. 천도복숭아가 아니었나 보다.
대신, 옆에 있길래 같이 집어 온, 생애 처음으로 사본 살구가 성공적이었다. 살구는 잼으로만 먹었지 생과는 처음 보았다. 살구 안 먹어본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다. 바로 이겁니다, 살구! 살구는 6,7월 한철만 잠깐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칼집을 내면 그냥 쏙 벌어지면서 씨앗이 툭 떨어진다는 거다. 툭. 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난다. 게다가 껍질채 먹어도 되니 바나나보다 더 쉬운 과일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온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작은 크기에 씨앗 비중이 커서 먹을 게 많지 않다는 거. 껍질반 속살반 씹는 느낌적 느낌이지만 그래도 감지덕지이다. 앞으로 내 여름 과일은 너다, 살구! 복숭아를 좋아하지만 껍질 까고 씨 발라내기 귀찮아서 못 먹던 모든 이에게 복음과도 같은 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