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 같은 개구리 떼 소리에 잠이 깼다. 어렴풋이 깨어보니 때마침 개구리 울음소리가 귀청에 자글거려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숙소 옆으로 늘어선 논에서 흘러오는 소리다. 개골개골, 그르륵그르륵, 와글와글... 수많은 아우성들이 되돌이표 사이에 갇혀 무한반복 중이다.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는 싱싱한 구애의 향연 속에 나만 외로이 아웃사이더로 겉돌고 있다. 저 울음 속에 우렁우렁하게 깃든 당당함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수 억년 전 모험심 강한 어류 한 갈래가 뭍에 올라 생명 진화의 정점에 섰을 때의 자신감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물속 경쟁을 피해 미지의 땅에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원시 양서류의 심해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일까?
가만히 개구리 울음에 귀 기울이다 보니 그 거침없음이 부럽다. 언제부터인지 목 놓아 우는 법은 우리네 생활백서에서 지워지고 없다. 슬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상가(喪家)에서도 곡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 진지 오래다. 인생의 나이테가 중년을 지나 장년의 복판으로 향하면서, 남 앞에서 운다는 것은 민망함을 넘어 남사스러운 짓이 되고 말았다. 주위에서는 갱년기를 거치면 눈물이 많아진다고들 하는데, 다들 부풀어 오른 눈물주머니를 어디에서 어떻게 비우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딱한 사연에 눈물을 질금거린 적이 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주위를 살피며 누가 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하지 않았던가. 황금주머니도 아닌 눈물주머니의 소소한 배출에 이리도 좀스러워지는 꼴이 개구리 보기에 부끄럽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개구리를 '개구락지' 라고 했다. 젖먹이가 젖을 놓기 힘들 듯, 엄마라는 애칭을 어머니로 바꿔 부르기 어렵듯, '개구락지'를 개구리라고 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개구리는 책 속의 글자였고, 인쇄용 잉크냄새를 풍겼다. '개구락지' 야말로 논두렁에서 눈빛을 교환하던, 바로 그 진짜배기였다. 어릴 적 '개구락지'는 꽤 흔한 녀석이었다. 바닷가 물이 빠지면 뻘밭으로 돌게 잡이를 나서곤 했는데, 미끼는 껍질 벗긴 개구리 뒷다리를 사용했다. 개구리가 들판에 널렸었기 때문에 미끼 구하기는 쉬웠다. 돌게 잡이 분야에서는 내 둘째 동생이 군계일학이었다. 귀신같은 솜씨로 한 양동이씩 잡아 왔다. 돌게가 바글거리는 양동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에 당도하면, 저녁 찬거리가 고민이던 부모님 입이 귀에 걸리곤 했다. 범접하기 힘든 동생의 재능이 부럽기는 했지만 시샘도 잠시, 맛있게 담근 돌게장은 내가 으뜸으로 많이 먹었다.
개구리는 여러 설화와 전설 속에 등장한다. 다양한 속담과 격언에서도 맑은 눈망울을 끔벅대며 삶의 길을 조언해 왔다. 그 친절한 가르침에 보답하고 싶었던 것일까? 옛사람들은 계절 변화의 가늠좌였던 24 절기의 한 조각에 '경칩'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구리에게 헌정했다. 옆 동네 일본에서도 인상 깊은 자리 한 구석을 개구리에게 할애하고 있다. 48장의 화투패 중 비광에 출연하는 개구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광 속 우산 쓴 선비는 일본 최고 서예가중 한 명인 '오노도후'의 젊은 시절 모습이란다. 중국의 왕희지, 우리나라의 한석봉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오노도후는 젊은 날 서예공부에 낙담하여 하산하다가 홍수에 떠밀려 죽음의 위기로 내몰린 개구리를 목격한다. 개구리는 끈질긴 도전 끝에 기어이 버드나무에 기어오르며 탈출하는데, 이 스틸 컷이 바로 비광 화투패에 그려져 있다. 오노도후는 '저런 미물도 죽을힘을 다해 삶에 임하는데, 내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개구리만도 못 하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필사적으로 다시 서예에 정진하게 되고 일본 최고의 명필의 반열에 오른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개구리의 진면목은 펄쩍 뛰어 달아날 때다. 어릴 적 풀숲을 헤치며 걷다 보면,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던 개구리를 곧잘 볼 수 있었다. 근육질로 다져진 뒷다리를 쭉 뻗으며 물갈퀴를 활짝 펼친 역동적인 포즈로 말이다. 등판에 비친 햇빛을 사방으로 튕기며 뛰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태양빛을 반사하며 하늘로 솟구치는 전투기처럼 늠름했다. 도시에서 실제 개구리가 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이제 개구리는 땅거미가 깊숙이 눌러앉을 무렵, 라디오 진행자처럼 목소리로만 출몰한다. 신비주의를 고집하는 왕년의 스타처럼 얼굴 없는 가수가 되어 버린 도시 개구리. 오늘 밤도 팬심 유지를 위해 늦도록 목청을 갈고닦고 있다.
애매한 시간을 메우는 심심풀이 게임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나는 영국의 『킹』이라는 회사가 2012년 발매한 《캔디크러쉬사가》라는 게임을 즐겨한다. 이 게임을 모방한 유사작들이 꾸준히 출시될 정도로 아류들의 원조이자 뼈대 있는 게임이다. 당연히 게임의 주인공은 다양한 캔디(사탕)인데, 조연급으로 딱 두 종류의 동물을 출연시킨다. 그중 하나가 붕어빵 비슷한 물고기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못난이 개구리다. 게임 속 개구리는 같은 색 캔디 세 개를 먹으면 울음주머니를 부풀린 후 다른 위치로 펄쩍 뛰어 달아난다. 개구리의 특징을 울음주머니와 껑충 도약하는 모습으로 포착해서 게임에 투영했다. 동서양의 개구리에 대한 특징 포착이 똑같이 닮아 있어 놀랍다.
군복은 속칭 개구리복으로 불린다. 전투상황에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만큼 개구리의 위장능력이 뛰어남을 빗댄 것이다. 개구리는 주변 배경과 몸 색깔을 어울리게 하는 위장술의 대가다. 논 가까이 가도 개구리를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위장술과 뜀뛰기 능력은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무수한 천적들로부터 종족을 지켜낸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버텨 낸 시간이 어언 3억 년을 훌쩍 넘겼다. 진화의 시간 속에서 겨우 몇백만 년 전 출현한 호모사피엔스는 개구리에 비하면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이다. 진화의 시계를 앞으로 돌려 1억 년 후 개구리와 인류 중 누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을까? 부질없는 내기겠지만, 조심스레 개구리에게 한 표 던지고 싶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개구리를 포함한 양서류의 개체수가 전 지구적으로 꾸준히 감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으로 개구리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명랑한 울음소리로 밤이 외롭지 않게 지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