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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r 28. 2024

해바라기 씨앗

해바라기 씨앗


늙은 앵무새가 가져다준 해바라기 씨앗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갔던 해는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와

어른 감옥에도 빛이 스며들게 했을지도 몰라.


캄캄했던 어른 감옥에 빛이 들자

사물들은 그 형체를 드러내는데


빛이 스며드는 공간

드러나고 싶지 않은 사물들까지

눈이 부시고

몸을 감출 곳이 없어

당황해하고


밝은 이면의 어두움은

더욱 짙어 보이는데


어차피 해는 점점 빛을 잃고

감옥은

원래의 어둠으로

돌아가겠지만


잠시동안 자신을 밝게 해 준

빛 한 줄기

찰나의 행복


늘 똑같이 어두울 것이 아니라

사라질 빛이라도

잠시 밝은 순간

이면의 어둠이

더욱 짙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사라질 것이기에

의미 없다가 아니라

사라질 것이기에

그 순간이 그토록

소중한 것인지도 몰라


해를 바라보다

해를 자신의 감옥 안에 담아버린

해바라기 씨앗은

어린 시절 감옥에 들어가

해를 나누어 주고

어른 감옥에도

스며들어...



* 나를 위한 글쓰기 첫 수강했을 때 거의 마지막 수업에

은희경 <새의 선물> 첫 장에 인용된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인용해서 적었던 글이 있었는데...

그 시에 이어서 적어보았어요.

다음은 그때 카페에 과제로 올렸던 글이에요.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어린 시절 감옥...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

모든 어른 남자들에게까지 잔뜩 화가 나있던

그 모든 기억들을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감옥에

해가 들어가 버렸기 때문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자리에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어린아이 한 명이 있었다.


세상과 등지고 있어, 해를 등지고 있어

시선이 바깥으로 향할 수 없었을 것 같은...

따뜻한 햇빛을 받지 못하고 자라

그렇게 똑같이 햇빛을 비춰줄 수 없었던,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던...

그래서 우물쭈물 

어린아이처럼 망연자실한 채 서있기만 할 뿐인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 한 명이...


그렇게 해서

시아버지에게 한 번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했는데

돌아가버리셨다.

이제 와서 늦었지만 마지막 기회라도 바랬었는데… 



  시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내가 진행을 맡아야 하는 차례였던 독서 모임 책이 <새의 선물>이라 책을 펴 들고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펴고 첫 장에 바로 인용된 자크 프레베르의 <새의 선물> 전문을 읽었을 때 한참 동안 눈물이 쏟아지고 펑펑 울면서 위에 글을 적었다.  햇살이 따뜻했던 겨울 오후에, 납골묘 어두운 공간에 유골함이 들어가 문이 닫히는 모습이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의 문장과 오버랩되었는지도..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내게 지워진 역할과 의무로만 바라보고 그 너머의 한 인간을 보기를 거부했다. '결혼 제도'로 억지로 연결 지어진 가족관계라는 것에 대한 반감과 '순종적이고 착한 며느리'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는 반항심만 가득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었더라면 '역할 너머'를 볼 수 있었을까? 역할로 규정하여 애초부터 선을 그어버린 관계는 '시아버지'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아픔을 가지고 그래도 자식을 위해 성실하게 그 오랜 세월을 희생하고 견뎌오셨을 한 인간의 숭고함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싫은 소리 한 번도 하지 않으신 따뜻하고 현명한 어른이셨음에도, 직면하고 싶지 않고 어렵고 두려운 나의 역할과 의무만 보일 뿐… 그 따뜻함에는 항상 등을 돌리고 외면하려 하고 있었다. 


  유품으로 남은 안동 권 씨, 몇 권의 족보, 오래된 책자의 길고 긴 내력을 보니, 이토록 긴 내력을 혼자 외롭게 조용히 품고 계셨던, 한 존재가 그토록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눈먼 어리석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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