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그다지도 많은 상심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왜 그는 자기 방 창가에 앉아 슈토름의 <임멘호>를 읽으며 때때로 눈을 들어, 해묵은 호두나무가 육중하게 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저녁 무렵의 정원을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곳이 그가 있을 자리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춤을 추면서 마음껏 활기와 재치를 부리라지! 아니,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을 자리는 여기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잉에의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으니까. 비록 그가 고독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저 안쪽에서 들려오는 웅얼거리고 쨍그렁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구별해 내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따뜻한 삶의 울림이 있으니까. 너 금발의 잉에여! 웃고 있는 네 길쭉한 푸른 두 눈이라니! <임멘호>를 읽지 않고, 그런 작품을 쓰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는 사람만이 너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명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슬픈 일이지! "
(토니오 크뢰거 / 토마스 만 / 민음사)
그녀는 양철 채집통에서 갈색 잔가지를 하나 꺼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풀을 여기 넣어줄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손에 노트를 쥐여주었다. (p.33)
"집에 오래된 노트가 있어. 거기에 온갖 노래와 시를 써넣곤 했지.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야. 책갈피에 에리카 꽃 하나가 꽂혀 있어. 하지만 시든 거지. 그걸 누가 나한테 줬는지 알아?"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눈을 내리깔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풀잎만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엘리자베트, 저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어린 시절)이 있었어. 그 청춘(어린 시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가 말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나란히 호수 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서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p.52)
(임멘 호수 / 테오도어 슈토름 / 문학동네)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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