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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Oct 26. 2021

올림픽 공원, 가보셨어요?

매일 산책, 가끔 사색

 어느덧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정이 안 간다. 빽빽한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 밖을 나서도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 차가 다니는 길인지 사람이 다니는 곳인지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한다.

 서울은 살기 편한 곳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병원 등 모든 편의 시설이 가까운 곳에 있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쇼핑,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서울만 한 곳이 없다. 무엇보다 많은 일자리들이 서울에 있다. 나 따위가 '싫다'라고 말하기에는, 많은 이들이 이 도시를 사랑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라 온 내게 도시의 삶은 버겁다. 어린 시절, 하루빨리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게 무색하게 하루빨리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집에 있어도 내 집 같지가 않고(실제 내 집이 아니다. 나는 그저 거쳐가는 세입자일 뿐이다.), 휴식을 취해도 쉬는 거 같지가 않다.

 건물 밖만 나서면 편의점이 있고,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유명 맛집 음식부터 건전지 하나도 배달이 되는 편의란 편의는 다 누리고 살면서도, 정이 가지 않는다. 이곳에는 나의 단골 식당이나 카페도, 위안을 주는 공간도 없다.

 아니, 사실 마지막 문장은 거짓말이다. 내게는 단골 식당도, 카페도 없지만 ‘위안을 주는 공간’은 있다. 






  “올림픽 공원 가보셨어요?”

 새롭게 사귄 이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대부분 이 근방에 살거나 직장이 위치한 이들이기에 나로서는 편하게(?) 묻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올림픽 공원이요…?

그럴 만도 한 게, 코앞에 사는 나도 재작년에서야 처음 가봤다. 공원 내 공연장은 종종 갔지만, 공연을 보러 갔을 뿐 '공원'이라는 공간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올림픽 공원이 눈에 띈 건, 코로나의 여파로 실내에서의 운동이 어렵게 됐던 시점이다. ‘작더라도 운동할 만은 하겠지?' 처음 들어서며 했던 생각이다. 그땐 미처 몰랐다. 올림픽 공원이 그토록 넓은지... 걸을 때마다 갈림길이 나오고, 몇 번을 가도 도무지 길이 익숙해지지 않으며, 잠깐 딴 생각 하다가 처음 본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기 보통이 아니네…

 올림픽 공원은 정말 넓고, 다양한 코스의 길이 있다. 송파 둘레길이나 한강, 지하철역 등 다른 길로 빠질 수 있는 길이 있고, 조깅 코스도 있다. 높은 곳, 낮은 곳도 있고, 다리도, 호수도 있다. 공연장은 물론 박물관, 미술관도 있고, 그 건물들을 두르고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편의점도, 카페도, 식당도 있고,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피크닉장도 있다. 고양이도, 새도, 도토리도, 밤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자주 간다고 갔는데, 여전히 모르겠는 길이 있고 '저번에 갔던 거기'를 가자면 헤매야 한다. (물론 나는 길치이다.)






 계절과 함께 올림픽 공원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갈 때마다 새롭고,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꽃들이, 나무와 풀들이 있다. 잔디밭과 공터도 있다. 저녁에는 배드민턴이나 농구를 즐기는 이들을 볼 수 있고, 주말 낮에는 스케이트보드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이들도 많다. 소풍을 온 걸로 보이는 유치원생들이나, 등산복을 입고 단체로 오신 어르신들도 만날 수 있다. 신나서 산책 온 댕댕이들은 보너스다.

 뭐니 뭐니 해도 올림픽 공원만큼 머릿속을 식히기 좋은 곳이 없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하고 머리가 아플 때, 올림픽 공원을 걷는다. 무거웠던 머릿속이 비는 느낌이다. 온통 초록 초록한 기운을 뿜는 그곳을 조용히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된다. 점심시간에 가볍게 산책을 하기만 해도, 오전내 받았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 올림픽 공원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다들 한 손에는 생명수를, 다른 한 손에는 외투를 들고 찰나의 시간을 즐긴다.






 이런 올림픽 공원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가 있다니...! 심지어 이 근방에 살거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보지를 않았다니! 이 좋은 공원을 두고 매일 한강으로 운동을 간다니!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묻는다.

"그런데... 올림픽 공원은 가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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