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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Jul 17. 2022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숨을 쉬기 위한 올림픽 공원 산책 방법

 "그게 내 비밀이에요. 항상 화가 나있죠."

 영화 <어벤저스>에서 '화를 잘 참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헐크의 답이다. 이 말은 회사에서 내가 자주 하는 농담인데, 농담이 맞기도 아니기도 하다. 회사에서의 나는 항상 화가 나있고, 잘 참는다. 내 화의 80%는 직장 상사와 동료, 20%는 기타가 담당하고 있다.

 화를 누르며 일을 하다 보면 손목에 작은 진동이 느껴지며 알림이 뜬다.


 잠시 쉬어가기

 마음 챙기기


 건너뛸까 고민하다 '계속'을 눌러 심호흡을 시작한다.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스마트 워치 화면에 작고 동그란 불빛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불빛이 점점 꽃 모양으로 퍼지다가 오므라들기를 반복한다. 꽃이 커질 때 숨을 들이마시고, 작아질 때 내뱉는다. 그렇게 1분 동안의 심호흡을 마치면 시계에 '잘했어요!'라는 화면이 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호흡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한숨을 자주 쉬어?'라는 말을 여러 명에게서 들은 후부터다.

 "한숨? 나 한숨 쉰 거 아닌데... 큰 숨이야!"

 변명하듯 말하다 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숨을 멈추고 있다가 크게 내쉰다는 걸. 집중할 때 그렇다기에는 빈도가 잦았다. 일을 할 때는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랬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닌데 병원을 가기도 애매했고, 간다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원인을 알지 못 한 채 몇 달이 지나며, 홀로 자가 진단을 했다. 이건 다 '화'때문이라고. 화를 참는 건 화가 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화를 내든, 내지 않든 이미 화가 나있다. 내 속에는 타다만 재가 쌓여있었다.

 퇴근하고 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을 두드려 맞은 거처럼 아팠다. 괴롭히는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처음부터 화가 안 나면 되는데......'

 마음속의 화를 다스리기 위해,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올림픽 공원 산책을 시작했다.

오전부터 올라오는(?) 날에는 점심시간에, 비교적 무난한 날에는 퇴근 후 산책을 했다. 걸으며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자연스럽게 숨을 쉬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운동을 목적으로 뛰거나 걸을 때와, 숨을 쉬기 위해 산책을 할 때는 많은 것이 다르다.

 운동을 목적으로 갈 때는 이어폰이 필수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듣거나 밀렸던 넷플릭스를 보며 뛰거나 심장박동수를 체크하며 파워워킹을 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숨을 쉬기 위해 갈 때는 이어폰이 필요 없다. 뛰거나 빠르게 걷지도 않는다. 때론 슬리퍼를 신고 설렁설렁 걷는다.이 때는 평소 잘 가지 않는 코스로, 숲 속으로 들어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풀벌레 소리가 BGM이다. 사람이 적은 구간에서는 마스크도 자유롭게 벗는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끼쳐오는 풀과 흙내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도 구경한다. 올림픽 공원의 실질적인 주인인 고양이들을 찾는 건,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잡생각도 피하는 것이 좋다. 되도록이면 생각은 버리고, 풍경에 집중한다. 올림픽 공원이 좋은 것은 집중할 수 있는 풍경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각종 나무와 꽃들이, 조형물들이, 벌레와 동물들이 눈에 띈다. 분명 며칠 전에 지나칠 땐 보지 못 했던것들이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지끈 거렸던 두통이 사라진다.


 여전히 화가 나고 큰숨도 쉬지만 빈도가 줄었다. 몸에서 힘을 빼기 위해, 화를 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거 까지 노력을 해야하나...'하는 현타가 올 때가 있지만...... 언젠간 그게 내 모습이 될 거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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