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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Feb 18. 2024

사기업 첫 면접

드라마에서 보던 걸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던, 흔한 캔디형 여자주인공의 면접 장면이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첫 사기업 면접의 감상평.


얼마 전 사기업 면접을 보고 왔다. 기대 없이 넣었는데, 운 좋게도 면접 기회를 얻었다. 아침부터 서울을 상경해,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 왔더니 누가 봐도 면접 보러 온 사람들이 검은색 정장 셋업을 빼입고 많이들 있었다.


떨리지 않게, 평소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캐모마일을 마셨다. 그리고 따로 종이백에 넣어 들고 온 면접용 로퍼를 꺼내서 갈아 신었다.

몇 번을 신어도 로퍼는 오래 걷기엔 발이 아픈 것 같아, 면접을 볼 때면 운동화를 신고 가서 그 근처에서 갈아 신고 들어가는 것이 내겐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면접 대기 장소로 이동하자 미리 도착한 면접 인원들이 모두 새카만 정장들을 갖춰 입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면접 복장이 자유라고 기재된 게 무색하리 만치, 다들 정장 셋업 차림이었다.

입장과 동시에 받아 든 면접용 명찰을 받고서, 왼쪽 가슴팍에 처음으로 달고나니 정말 드라마에 나오는 면접을 보러 온 기분이었다.


공기업 자소서와 면접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공기업은 블라인드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에서는 습관처럼 출신지, 대학, 전공, 경험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없도록 스스로 필터링을 해야 한다. 익명의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공기업 면접에 들어가면 이름조차 말하질 않는다. 그저 번호를 말할 뿐.

(사회 경험에 대해 말할 때도 뭔가 정식으로 기관 명칭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돌려서 말하곤 했었다. 더불어 대학교내 봉사단 이름도 자체 필터링 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면접에서 내 이름을 말했다 싶었다. 블라인드 면접으로 인해 거의 무명(?)의 면접을 봐왔었구나 싶다.


아무튼 지금껏 공기업 진로를 생각했었기에, 사기업 면접은 처음이었는데. 중소기업 면접을 보기도 전에, 운 좋게 중견에 면접을 보러 와서인지 드라마에서만 보던 기업 면접을 체험해 보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 면접약이라 불리는 인데놀을 먹었다. 공기업 면접들을 거치며, 깨달은 꿀팁이라면 인데놀을 먹으면 적어도 염소 목소리는 안 낼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웃는 얼굴로 방긋방긋 있으려니까, 입꼬리가 부들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무튼 나의 가장 큰 약점인 긴장 때문에 떨어서 나는 염소 목소리는 피했다. 인데놀을 먹으면 정말 큰 긴장이 안 된다. 놀라운 명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면접을 잘 보냐. 그걸 논한다면. 그냥 안 떠는 거뿐이지. 말 잘하는 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그냥 안 떠는데, 말 잘 못하는 사람이 된다.(적어도 나는)

그냥 안 떨고 말하지만, 여전히 생각이 없는 사람이랄까.

예를 들어, 평소의 내게 요즘 코스피는 어떠며 땡땡 기업의 핵심 전략은 무엇이며, 전사적 차원의 관리법은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친구가 묻는다면, 친구가 묻는데도 정확히 답변할 수가 없다.

왜냐면 애초에 모르니까. 그걸 물어볼 줄도 몰랐고, 친구한테도 기승전결을 갖춰서 답변할 수 없어서. 한 마디로, 긴장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면접 잘 보는 답변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아무튼 길게 늘어놨지만, 면접을 망쳤다는 내용의 일기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인데놀의 효과는 막강해서 약간 졸리기까지 했다. 언제 끝나나..

5명 이상의 면접자들이 3명의 면접관 앞에 서서 순서대로 공통질문에 대답도 해보고, 한 명씩 집어서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면 할 사람만 손 들어서 답하기도 하는데.

손 들어서 말끔히 답을 하는 면접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취준생 필수 유튜버라던 '면접왕 이형'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 있구나 싶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들 떨지도 않고, 아나운서처럼 말을 잘하는지.


그래서 내 답변 준비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남의 답변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지금껏 다대일 공기업 면접을 보다가, 라이브로 함께 다른 면접자들과 다대다 면접을 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언제 이런 곳에서 면접비를 받고 면접을 보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청석 사람처럼 구경하고 온 기분이었다. 꼭 학교 다닐 때, 개인 과제 발표를 준비하는 것도 힘들고 떨리는데. 다른 학생의 발표를 보는 건 또 재밌는 기분이랄까. 다대다 면접은 그랬다.


지금껏 본 면접들은 조금 공채 느낌이 나고, 중소기업들에 비해 정식 면접 프로세스 느낌이 나서 그런가. 면접관이 꼭 3명이 있었는데.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닐 때, 인소에 나오는 남주 친구들의 조합이 ' -_-^ , ^_^ , >_< ' 이런 국룰처럼.

'분위기 메이커, 엄한 사람, 꼼꼼한 사람' 이런 느낌의  조합이 필수 같은 느낌? 면접조합 국룰인 느낌이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채용 공고 들어가서 지역의 일자리를 스크랩하며 돌아왔다. 그러다 진로 사주를 보러 가야 되나. 생각하다가 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면접비가 많으면 돌아올 때 ktx를 타고 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적길래 무궁화호를 타고 돌아왔다. 무궁화호에 맞춰서 주신 것 같았다. 그래도 면접비를 안 주는 곳이 많아서, 주는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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