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면접 처음 보는 사람..
시간은 정말로 빠르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늘 그랬다.
직장을 다니든, 백수가 되든. 하루의 패턴은 다 비슷하니까.
직장을 다니면 아침출근-점심-퇴근.
백수면 아점기상-점심-카페(혹은 도서관, 약속)-저녁
이 패턴이 무한 반복되니까. 중간고사 팀플, 기말고사, 고등학교 체육대회, 합창대회, 걍 기타 행사들.
그런 것들을 약간 비슷하지 않은 패턴들로 보내면 하루하루 밀도가 대단한 하루라 그런지. 지금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가자면. 이렇게 빨리 1차 면접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고. 기묘하게도 일주일이나 지난 것 같은데, 꼭 일주일 전처럼 서울의 지하철역에 서있었다. 1차 면접 본 날은 날이 너무 따뜻해서, 코트를 벗고 들고 다닐 정도였는데. 2차 면접은 너무 춥고 하루종일 눈이 섞인 비가 내렸다.
1차 면접을 망쳤다고 했는데, 2차도 야무지게 망쳤다. 임원 면접을 처음 보니까, 1차보다 더 말을 못 하고 절게 되었다. 당최 채용인원이 몇인지는 모르겠는데, 2차 임원 면접에도 5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했다. 여기서 몇 명이나 뽑히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다.
첫날처럼 왼쪽 가슴팍에 명찰을 달고서, 면접 순서를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 면접 후기에서 이미 1차에서 거의 합격자는 확정이 났다고, 2차는 1차 면접 시간의 반토막이라는 내용을 봤었다.
그래서 사실 큰 기대는 없어서, 2차 면접을 준비할 때도 거의 전날에 벼락치기로 한 수준이었다. 기본 질문만 셋업 했지만, 이 마저도 현장에서 절긴 했다.. 하필이면 옆에 지원자가 말 진짜 진짜 잘하셔서 비교군 개빡셌다..
그래서 속으론..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하지..? 걍 아나운서 수준인데.' 솔직히 답변 내용은 면접 유튜버 영상에서 본 것 같은 스크립트처럼 느껴져서 흥미롭거나 새롭진 않았는데. 정말 답변을 유창하게 잘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답변하는 나는 말하는 감자 같았다..ㅎ
그리고 다대다 면접의 치명적인 단점.
면접관이 질문을 던지고, 내게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답변을 듣고 있게 되는데. 이때 면접자들의 답변을 저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고 있노라면, 속으로 구상하려고 노력하던 면접 답변은 흐물거리면서 구성이 흩어진다...(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난 그랬다.)
그리고 그러다가, 면접자의 각기 다른 답변들을 듣고 있다가 면접관이 했던 최초의 질문을 혼동하거나 잊어버릴 뻔하기까지 했다.. 면접관의 질문이 흐릿해진달까..(마찬가지로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난 그랬다..)
유독 내 앞에 길어지는 답변자들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고 있었나 보다..ㅎ
그리고 또 다른 단점.
준비해 갔던 질문의 답이, 다른 지원자의 입에서 나오기도 한다(!!)
기업이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업의 인재상에 빗대어 준비했었고. 내게 답변 순서가 오기까지 해당 스크립트를 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는데, 내 전전 순서의 면접자에게서 비슷한 내용의 답변이 나왔고.
나는 급히 속으로 답변 내용을 수정하려다가, 답변을 절었다.. ㅎ
그렇게 말 잘하는 면접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2차로 올라온 지 모르겠는 나는. 말하는 감자가 되었고. 그래도 임원 면접 구경도 잘하고 간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젠 그냥 면접이 간단하고, 이렇게까지 긴장은 안 될 만한 작은 규모의 기업 혹은 사무실에 넣어야 하나 생각했다. 이 과정을 앞으로 더 반복할 자신도 없고. 내 옆에 있던 지원자처럼 유창하게 답변 능력을 늘릴 수 있을 거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오래된 취준 덕분에 조금의 메타인지가 되었달까.
곧 면접 결과가 나올 텐데... 하아.. 또 구직 사이트 들락날락하며 다크서클 낀 얼굴로 살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하지만 금방 돌겠지.)
서울에는 친구가 없어서, 모처럼 기차 타고 올라간 서울에서 약속을 잡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면접 절고, 집에 가기엔 여기까지 올라온 게 망한 면접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해서 예정대로 전날 서치해둔 카페에 방문했다. 카페에 오면, 면접 아니고 케이크 먹으려는 목적이었다고 자기 합리화하면 되니까..!
면접 덕분에 서울의 멋진 카페에서, 맛있는 케이크 먹고 내려왔다. 사장님이 엄청 친절하시다고 리뷰에서 많이 봤는데, 덕분에 기분 좋게 서울나들이 마무리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들렀던 카페에서 사 온 피스타치오 마들렌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또 가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떨어져도 카페 맛집 하나 발굴한 셈 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해본다. 그렇다.
이건, 긴 자기 합리화의 일기다.
그리고 문득 추운 비를 맞으며 걷다가, 생각한 건데.
이 면접에서 떨어진대도, 뭐. 내가 친구가 없나, 부모님이 없나, 형제가 없나. 난 여전히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