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미술관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에 전시된 서울국제조각페스타를 관람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끝난 전시회를 저와 가족들은 정말 잘 봤습니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다른 업무로 바쁘실 텐데요.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담당자님께 메일을 드립니다. 바로, 전시회 숍에 있던 굿즈 때문입니다. 바쁘신 건 알지만 5분 정도 시간을 내주셔서 메일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아이가 올해 크리스마스에 산타 선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산타 선물을 기다리죠. 하지만 문제는 이 녀석 나이죠. 12살이면 산타 존재를 알 만도 한데 딸은 아직 산타를 믿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누워서 손가락을 뜯다가 갑자기 산타가 어떤 선물을 줄까 하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합니다. 마치 누구 들으라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 아이에게 산타가 누구 같니?라고 물으면 산타가 산타지 누구냐고 하면서 해맑은 눈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직 세상에 때가 덜 탄 것인지 참...... 애매합니다.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알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둘째가 사교성이 좋은 건 아니라서. 특히 코로나로 줌 수업을 오래 하면서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아 졌고, 친구들이 없으니 게임과 휴대폰에 빠지고, 그러다 보니 더 방 안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올해는 착한 일을 많이 못해서 산타가 선물을 안 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딸은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떨어진 휴지도 줍고, 밥도 많이 먹고, 방 청소도 잘했다고 우깁니다. 그건 네가 원래 할 일이고, 누군가를 위한 일. 그게 착한 일이라고 하면 아이는 머리가 커서인지 말도 안 되는 반론을 내놓습니다. 나를 위한 것도 남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내는 불만입니다. 산타와 부모가 주는 선물로 돈이 두 번 나가기 때문이죠. 첫째 아이처럼 실수로 책 상 위에 놓인 선물 영수증을 보고 산타를 유추하는 논리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둘째는 눈치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아내는 일부러 선물 영수증을 책상에 올려놓거나 아이가 게임하는 동안 대놓고 선물 포장을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반대했죠. 첫째 녀석이 영수증을 들고 뭐냐고 물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진 않아서죠. 아비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첫째처럼 우연히 산타가 썰매 타고 온 할아버지가 아닌 거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잡고 있는 배 나온 아저씨임을 알게 되면 좋을 텐데...... 눈치가 없는 건지, 선물을 두 번 받으려고 꾀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딸이 산타 정체를 알기 바라는 이유는 꼭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딸이 크면서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더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장난감이나 레고 정도면 됐는데 크면서 선물들이 조금 더 난해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검색한 실내등을 보더니 산타 선물로 받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하더군요.
"어떤 등인데?" 하고 물으면, "그냥 검은색에 빛이 은은하고 작아!"라고 이야기합니다. 검은색에 빛이 은은하고 작은 등이라니...... "그냥 대충 말하면 산타도 바빠서 선물을 빠뜨린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기 사정이 아니고 산타 사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귀엽던 녀석이었는데......)
설명이 좀 길었는데요. 올해 선물은 바로 담당자님이 개최한 전시회와 관련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회를 갈 때가 종종 있는데, 아이는 늘 그렇듯 대충 휙 보고 다리가 아프다고 빨리 나가자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숍에서 파는 굿즈가 조금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한 여자아이가 빨간 풍선을 바라보는 뱅크시 작품을 응용한 그 포스터 말입니다. 갑자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저녁밥을 먹다가 선전포고를 하듯 전시회에 있는 포스터를 산타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하네요. (그 순간 저와 아내의 눈이 마주쳤는데, 어이없어하는 아내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네요.) 부랴부랴 검색했지만 이미 전시회는 끝났더군요. 담당자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뭐 저희 세대야 다 어렵게 살았잖습니까! 저는 어린 시절 양말 안에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 양말을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양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후 양말을 다시 건 기억은 없는데요. 다행인 것은 그 시절 크리스마스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산타에 대한 원망도, '난 착한 어린이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없이 그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할까요? 선물을 기대하며 양말을 거는 어린 자식을 보며 그 속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내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아이고 뜬금없는 추억팔이가 됐습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는데, 아무튼 전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산타를 알기 전 까진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자! 이런 거죠. 그런데 전시회 포스터를 구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담당자님께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쉽지 않겠지만, 바쁘시겠지만 어떻게 구할 방법을 알려주시면 제가 그곳을 찾아가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분이 담당자면 그분을 알려주시면 제가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바쁘시겠지만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리며,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남은 이 시기에 애타고 있는 이 아비의 마음을 잘 굽어살피시어 주시옵길 바랍니다. 좋은 아빠 노릇 한 번 도와주십시오! 제발.
즐거운 성탄 연휴 보내시길 빌며,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