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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Dec 28. 2023

증발 1

그녀가 사라졌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대리의 마지막 인사는 간결했다. 이 대리는 이 말, 정확히 말하면 문장을 남기고 팀 단톡방을 나갔다. 경환은 소파에 누워서 휴대전화를 멍하니 쳐다봤다. 글 옆에 9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주말이라 팀원들이 회사 단톡방을 확인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화면을 뚫어지게 보던 경환은 소파에 휴대폰을 던졌다. 곧 주말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이 대리의 뜬금없는 인사말이 궁금했지만, 주말이라 더 묻지 않았다. 월요일에 출근해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고, TV 채널을 돌렸다. 지금은 주말드라마 인혜 딸이 누구로 밝혀질지가 더 궁금했다.

  그렇게 이 대리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감쪽같이 증발했다. 그녀는 오전 회의 후 점심시간에도 나타나질 않았다. 팀장은 이 대리에게 연락이 되질 않자, 외근을 나가며 그녀와 친했던 동료에게 말했다. 계속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라고. 다음 날도 그녀가 출근하지 않고, 연락이 안 되자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이 대리의 전화번호가 결번으로 뜨자 팀장은 당황한 눈치였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한다. 상사에게 욕을 먹거나,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망치거나, 또는 그냥 날이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보통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늦게 출근하거나 보고 없이 월차를 내는 정도로 반항 후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사에 출근한다. 그런데 주말에 갑자기 문자로 퇴직 인사를 보내고 무단결근 후, 전화번호를 없애는 일은 회사 생활에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 대리가 사라진 다음 날부터 사무실에는 이상한 소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이 대리 낯빛이 어두웠다는 이야기, 점심이면 자주 혼밥을 하거나 (하지만 이건 코로나 후 보통 혼밥을 많이 하기에 신빙성이 떨어졌고) 다른 사람보다 재택근무를 많이 했으며, 최근 비트코인과 주식이 떨어졌는데 이 대리가 자주 휴대전화를 보며 혼잣말했다는 이야기, 얼마 전 머리를 잘랐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애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애인과 이별의 충격 때문일 수도 있고, 회식 후 가방을 가지러 사무실에 갔는데 이 대리 혼자 야근을 하고 있다는 동료의 이야기까지 천차만별 소문들이 사무실을 배회했다. 부정적인 이야기 중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는 경환과 나이가 같은 최 차장이 점심을 먹으며 한 말이었다.

  "혹시 로또 된 거 아니야? 그것도 미국 로또."


  소문은 꼬리를 물며 사내를 떠다녔지만, 아무도 이 대리의 퇴사 이유를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갔다. 인사팀에서도 퇴사 절차를 밟으러 이 대리에게 연락했지만 헛수고였다. 팀장은 회의시간이나 밥을 먹을 때면 가끔 이 대리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다.

  "퇴사할 거면 한다고 이야기해야지 이건 뭐 누굴 엿 먹이려고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야? 불만 있으면 다 들어주잖아. 내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일은 나이스하잖아!"

  아끼는 팀원이라 몰래 콘서트 표나 전시회 입장권도 줬는데 이럴 줄 몰랐다며 팀장은 술을 먹을 때면 자주 이 대리를 원망했다. 팀원들은 팀장과 이 대리의 관계를 두고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 최 차장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둘 사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봤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흘러가자 그러려니 하며 일 속에 묻혔다.

  이 대리가 사라지자, 팀원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회사와 팀장이 얼마나 싫었으면 저랬을까 하며 그녀를 동조하는 파와 이 대리를 욕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에게 똥을 싸고 간 거라고, 혹자는 이왕 나가면서 팀장 욕먹게 할 거면 거하게 긁고 나가지 저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면 별로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부럽다"

  경환은 이 대리의 빈자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경환이 기억하는 그녀는 싹싹하고 일 잘하는 후배였다. 늘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모니터를 봤으며 메일과 회사 메신저도 빠르게 답했다. 파트가 달랐지만 한 번 같이 일해 보고 싶은 탐나는 친구였다. 업무 지시를 하면 네? 하고 3초 정도 경환을 쳐다보는 옆자리 변주임과 달리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메일에 쓰는 이 대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로또가 당첨됐던, 뭐가 됐던 회사와 팀장에게 빅엿을 먹이며 사라질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결국 이 대리가 사라지자, 그녀 일은 팀원들이 나눠 맡았다. 만년 과장인 경환에게는 가장 악성 업체가 왔다.

  경환과 변주임이 4개 업체를 관리하는 것도 정신없는데 이 대리 업체 중 한 곳이 경환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월말 결산이 오자 이 대리 맡았던 업체는 납품 일자가 밀리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월말에 정신없던 어느 날, 변주임은 늘 그렇듯 집에 일이 있다고 먼저 퇴근했고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해서 사무실에 들어온 팀장은 경환에게 말꼬리를 흐리며 한 방을 날렸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정 과장님 아직도 야근이세요?  늘 야근하며 사람 미안하게 하고 있어. 이건 말이지, 일 처리가 나이스하지 않아"

  팀장은 두 살이나 나이가 어렸다. 꼬박꼬박 존댓말로 호칭을 부르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반말을 섞는 그가 일갈을 날리고 사라졌다. 경환은 팀장이 사라진 문을 한참 쳐다봤다. 왜 자기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밤에 혼자 남아서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거지.

  일진은 아침부터 사나웠다. 우회전하기 위해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출근길에서 경환은 직진 차선에서 우회전을 위해 깜빡이를 켰지만 아무도 양보하지 않았다. 밀린 차도에서 긴 줄로 천천히 이동하는 차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덧 유기체처럼 하나로 움직였다. 특히 통근버스 줄은 틈을 주지 않았다. 그 속을 파고들 때면 가시가 불쑥 튀어나오듯  클랙슨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작은 트럭이었다. 트럭 운전사는 창문을 열더니, 인상을 쓰며 지껄였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어린아이가 봐도 그건 욕이었다. 경환은 살면서 세 번 정도 그런 얼굴을 봤다. 군대에서 신병 때 처음 마주친 교관으로부터, 신입사원 때 납품 업체 대금에 0을 하나 더 넣은 실수를 했을 때 선배로부터. 주식으로 몇천만 원을 꼬라박았을 때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 얼굴에서. 물론 운전사의 얼굴은 세월에 찌들어 더 흉악해 보였다. 화보다는 살기에 가까운 눈초리였다. 경환은 그 사이에 끼지 못하고 튕겨 나와 직진 신호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출근해서 경환을 기다리는 더 짜증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정기 주차에 탈락해서 다음 주부터 주차가 어렵다는 안내였다. 이번부터 연차 순이 아닌 추첨 순으로 공정하게 주차를 뽑았다는 안내와 함께 6개월 뒤 다시 신청하라는 총무팀 메일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나와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경환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올라가는 집값에 밀리고 밀려 지금 동네로 이사했다. 산이 많아 공기도 좋고, 개구리 소리도 들려서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했고 날이 더워지면 개구리 소리는 확성기를 단 소음으로 변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물이 고인 도랑에 개구리알들이 가득했다. 마치 경환의 정리 안 된 컴퓨터 바탕화면 같았다.

  주차 대기자에도 경환의 이름이 보이질 않자 사내 메신저로 총무팀 담당자를 찾아 문의했지만 대기 순번 39번으로 주차권을 받기 어려우니 양해해 달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계속했다. 공정한 추첨. 주니어들이 회사와 익명 게시판에 주차권에 대한 항의가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총무팀은 신청자들을 제비 뽑기로 선정했고, 공정성을 위해 경비원 아저씨가 입회해서 진행했으며, 뽑은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되었다고 묻지도 않는 내용을 자세하게 안내했다.

  주니어 때는 직급이 낮아 주차권을 못 받고 이제 주차권을 받을 짬밥이 됐지만 그놈의 공정성 때문에 경환은 탈락했다. 사원일 때는 직급이 낮아 차별을 받더니, 연차가 쌓이니 이제 평등 아래 같은 줄에 서게 됐다. 나이와 직급이 아무런 특혜가 되지 않았다. 오전에 탈락 메일이 하나 더 왔는데 그것은 회사 피트니스였다. 이 역시 공정한 추첨으로 탈락했다. 새롭게 바뀐 사장은 공정을 강조하며 주니어들의 입맛을 맞춰줬다. 이게 바로 본인이 생각하는 공정이며 현재 이 회사에 필요한 가치라고, 올해 신년사에서 (MZ에게 눈높이를 맞춘다며) 저스디스의 THIS is MY LIFE를 음악 첨부해 들으라면서 메일에 써서 보냈다.  

  경환은 3년 동안 진급에 탈락해 계속 과장으로 불렸지만 회사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른 일보다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애사심으로 똘똘 뭉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회사는 오래 다닌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고인물로만. 오랜 경력으로 쌓인 경험을 꼰대의 전유물로 만들어 바닥에 쓸어버렸다. 경환이 보고 있는 모니터 안 마우스 커서가 화면 중앙에 알 수 없는 글씨를 뱉어냈다.

 '이것들이 내가 한번 없어져 봐야 고마운 줄 알지!'

  경환도 이 대리의 빈자리를 한번 보고, 키보드를 엎어 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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