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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Sep 26. 2023

[단편소설]독서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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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독서동호회 하지 않으세요?” 그녀가 말했다.

  “네?”

  “사내 독서동호회요.”

  “사내에 독서동호회가 있나요?”

  “네, 제가 거기 총무인데 피디님 이름을 본 것 같은데 동명이인인가요? 소속이 시사교양국이었던 것 같은데요.”

  회사에 박경환이란 이름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시사교양국에 박경환은 나 혼자였다. ‘제 이름이 거기 왜 있을까요?’ 라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자리에 돌아왔다. 

그녀가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고, 내가 그녀와 같은 동호회에 있다는 사실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몰랐지!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동호회를 찾았다. 회사에 동호회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방송국도 회사이긴 하지만 일반 회사와는 달랐다. 일과 야근, 그리고 또 야근만 존재하는 곳이 방송국이었다. 프로그램 제작이 시작되면 몇 달씩 촬영과 편집이 이어져 낮과 밤이 바뀌기에 회사 복지와 운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회사 복지 메뉴를 클릭하자 동호회 리스트와 함께 각 동호회 회장과 총무 이름이 보였다. 테니스와 축구, 농구 등 운동 동호회에서부터 꽃꽂이, 와인 등 뜻밖에 다양한 동호회들이 있었다. 한가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화면을 내리던 중 <봄과 씀>이란 독서동호회 옆에 총무 이지수 이름을 발견했다.

  보고 쓴다는 뜻의 독서동호회는 2주에 한 번 수요일에 모였다.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한다고 적힌 동호회 소개 글이 보였다. 다음 모임 안내에는 <이토록 달달한 순간, 책과 극>이란 소제목이 달려있었다. ‘달달’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을 읽고 이야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회원리스트를 찾아보니, 진짜 내 이름이 있었다. 불현듯 옆자리의 김 선배가 생각났다. 코로나가 있기 몇 년 전 그의 부탁으로 동호회를 하나 든 것 같은데, 그게 독서동호회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가입하면 회사지원금으로 산 책을 받을 수 있는데, 책을 더 받고 싶어서 그가 나의 이름을 빌려 가입한 곳. 독서동호회였다. 왜 책이 더 필요하냐고 묻자, 회사와 집에 한 권씩 두고 읽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의 책상에 쌓여가는  책들은 바로 나에게 올 책이었다. 책 좀 사지! 얼마 한다고……. 책 이야기만 나오면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던 김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독서 모임 하게요?”

  조연출이 내 자리를 지나치다 노트북 화면을 보고 끼어들었다. 

  “신경 끄셔!”

  “화면이 보여서요. 안쪽에 앉으시라니까 선배가 굳이 바깥에 앉았으면서.”

  그냥 회사 복지를 찾아보고 있다고 하자 자기 친구도 독서 모임을 했는데 거기서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다고 조연출은 말했다.

  “지금 책 읽을 시간이 어딨니? 다람쥐 이후에 뭐 할 건지 고민 좀 했어?”

  “아니 선배님. 좀 쉬고 하자더니. 그리고 다음 프로그램 위해 책이라도 좀 읽어야죠.”

  꼭 또박또박 대답하는 녀석이었다. 조연출은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지난주 내내 휴가를 냈다. 그렇게 통으로 일주일을 보낸 뒤 출근했다. 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쉬냐? 라고 말하며 노트북 화면 창을 내렸다. 독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와 하는 일이라면, 아니 함께하는 모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연애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라니. 특히 영화라면 자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따라 방송반에 가입했다. 조회 시간에 땡땡이칠 수 있다는 친구 꼬임에 들어간 그곳에서 한 학기가 끝나기 전에 친구들과 영상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 방에서 혼자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본 수많은 뮤직비디오. 그 화면을 따라서 편집한 <힙합을 추는 아이들>이 청소년 UCC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기뻐하며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표정으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나와 친구들은 집에서 가져온 16mm 가정용 홈비디오 카메라와 VHS 비디오플레이어로는 좋은 화질의 영상을 만들 수 없으니 편집이 가능한 컴퓨터와 좋은 소니 카메라를 사달라고 요청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허락했다. 나중에 촬영과 편집 장비의 가격을 알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중고 가정용 파나소닉 카메라와 중고 컴퓨터를 구해 와 편집프로그램을 깔아줬다. 그 후 방송반 27기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길 잃은 강아지<백구 이야기>와 학교 안 자연을 다룬 <학교 안 동식물농장>은 선생님들도 좋아했고 공모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꿈은 대학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덜 만나는, 그냥 나 혼자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그중에서도 서로 속고 속이는 사람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다루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자연 다큐멘터리도 고민은 있었다. 카메라 앵글에 오지 않는 다람쥐를 그냥 기다리느냐 아니면 유인책을 놓고 오게 할 것인가.

  그녀에게 메일을 썼다. 박경환은 바로 나라고. 일 때문에 바빠서 그동안 유령회원이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겠다고. 특히 나도 책 프로그램을 맡을 정도로 독서에 관심이 많으며(라고 썼다. 처음에는 그냥 사실대로 진정성 있게 썼지만,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다음 모임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쓴 메일을 몇 번 다시  읽고 수정한 후 보냈다. 그리고 혹시 몰라 가입신청서를 내려 받았다. 신청서는 간단했다. 짧은 자기소개와 함께 부서와 이름, 최근에 읽은 책을 적어 내는 것이었다.     


  시사교양국 박경환. 근래에 읽은 책은 원색한국식물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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