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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Nov 17. 2023

[단편소설] 그림자

영진은 7살 때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애초에 그림자가 없었던 것인지, 중간에 잃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5월 햇살이 가득한 유치원에서 영진의 짝꿍이 말했다.


어! 그림자가 없다.

영진은 처음에 그 소리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짝꿍과 달리 자신에게는 검은 그림자가 발밑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손을 천천히 놓고 뒷 걸음을 치며 다른 친구에게로 갔다.


다음 날 유치원에 가는 길에서 만난 짝꿍이

자신의 발밑을 계속 보자, 영진은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맞벌이 하는 영진의 부모는 왜 그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고, 학교에서 영진은 자주 아픈 학생이었다.

날이 좋은 날이면, 특히 햇살이 가득한 날 교실 밖 활동이 있는 날이면

영진은 어김없이 아파서 양호실로 갔다. 지각도 잦았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은 영진은 말 그대로 그림자 같은 학생이 되었다.


그러다가 4학년 때인가 5학년 때쯤 우연히 보게 된 드라큘라 영화에서

뱀파이어들은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영진은 그대로 얼음이 된 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바로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 는 아닌지.

거울 속에 비친 창백한 얼굴과 손 위에 선명하게 보이는 핏줄. 유독 길어 보이는 엄지와 검지의 손톱.

잠잘 때면 이를 갈며 혀에 닿는 송곳니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혹시 하는 마음에 마늘을 통째 삼켜 먹었지만 아무 탈이 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조금은 안심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영진은 이런 고민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지만, 아빠는 드라큘라 영화를 그만 보고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했고, 엄마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그림자가 없네? 라며

(마치 쌍꺼풀이 없네. 나중에 커서 쌍수를 하자는 식으로 넘겼다)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런 말을 들은 영진은 서운했을 법한데, 오히려 다행이었다.

헐. 그림자가 없어?

아니 이건 신비한 TV에나 나올 것 같은 일인데 식으로 반응했다면

사춘기 영진은 더 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맞벌이에 바쁜 부모는 (특히 아빠는 동료와 새 사업을 시작했지만 재고가 쌓여 투자받기 위해

은행을 다니느라 정신없었고, 엄마는 직장 내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에)

그의 고민을 건성으로 듣고 답했고, 영진도 이게 별일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없는 영진은 중고등학교를 그림자처럼 다녔고,

졸업을 앞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의 장점, 또는 그림자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네이버 검색창에 넣었지만

마땅한 답은 없었다. 네이버 지식인에 재미있는 대답이 하나 있었는데,

그림자가 없으니, 밤에 침투하는 킬러가 가능할 수 있다며 화이팅 하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 몰래 사람을 죽이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을 영진은 생각했다.

그림자가 없어서 빛 속에서도 몸을 숨기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소리는 어떡할까!

영진은 그림자가 처럼 살긴 했지만, 늘 집에서 배달 음식과 과자를 달고 살아서

그의 몸은 180cm에 100kg이 넘었다.

몸이 둔해서 움직일 때마다 발소리가 크게 났다.


검색을 계속 하다가 영진의 눈에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를 이용한 인형극이었다.

인형의 움직임 위로 손이 보였다.

자신이 한다면 손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영진은 바로 종이 인형을 만들고 전등을 이용해 간단히 인형들을 움직였다.

허공에서 인형 그림자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영진은 스토리 하나를 생각해 그림자 인형극을 촬영했다.

하지만 촬영과 편집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며칠을 밤새 편집해서 유튜브에 계정을 파서 시험 삼아 올렸다.


하지만 다음 날

조회수는 5회였다. 영진 자신이 클릭한 조회수였다.

대박을 꿈꾸며 영상을 올렸던 영진은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유튜브 앱을 껐다.


영진이 만든 신기한 그림자 영상이 떡상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어떤 알고리즘에 걸려서 조회수가 올라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디지털이나 영상 편집이 아닌 수작업으로 촬영하고 진행된 그림자 인형인데

어떻게 손 그림자가 없냐는 댓글이 달렸고, 이거 조작 아니냐는 의심의 댓글도 많이 달렸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영상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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