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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Jan 07. 2024

Love actually is all around

_고통 속에서도 일상을 아름답게 살아내는 법




"어머니 주무시면 세탁실로 와서 누나 좀 도와줘!"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내게는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생일보다 더 설레는 날이다.

엄마를 일상생활로 돌려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병원생활을 나는 누구보다 즐겁게,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희망을 품은 확고한 목표란 것이 함께 하고 있을 때. 달려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지치지 않는다. 내가 그랬다.  


비록 병원이 내 삶의 전부인 나날이지만,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살갑게 서로를 위하며 지냈던 병실 사람들과 엄마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설렘을 누릴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루만큼은 모두가 설레며 행복했으면 했다.


병원 원무과에 부탁해 PC와 프린트를 좀 쓰겠다고 했다. 가랜드 파일과 눈꽃 송이 도안을 출력했다. 아이들과 종종 함께 오리던 눈꽃 송이는 섬세한 가위질이 필요하지만, 인내할수록 디테일하고 아름다운 눈꽃 송이가 된다. 아이들과 할 땐 수준별로 도안을 섞지만, 마음껏 난이도가 있고 예쁜 것들로 준비했다.




2015년 12월 23일. 불 꺼진 병실, 모두가 잠든 밤.

세탁실로 갔고 이내 동생이 따라왔다. 뇌출혈 어머니를 간병하는 그 동생 T는 부산 병원에서 만났고 나와 엄마가 분당으로 올라오자 머지않아 어머니를 모시고 뒤따라 올라왔다. 이후 우리는 누나 동생으로 의지하며 힘든 간병 생활을 함께 했다. 


세탁실 건조기 위에 도안을 놓고 서서 간호 병동에서 빌린 가위로 열심히 가위질했다. 하루의 피곤이 몰려와 어서 마무리를 하고 자야 하는 시간이지만, 괜찮다. T와 한참을 오려낸 다음 살금살금 병실로 들어가 낚싯줄에 가랜드를 연결하고 눈꽃 송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나눠 붙였다. 나도 그만 눈을 붙였다. 커튼을 열어젖힌 병실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꿈꾸면서.




다음은 동생 차례. 친동생 K는 무뚝뚝한 상남자 같지만 유머가 있고 섬세한 면이 있다.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도 잘 하고,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께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꽃을 선물하는 아이다.

K는 제 몸에 맞는 산타 복장을 구하고 병실 사람들의 선물을 준비해서 분당으로 올라왔다. 


간소하지만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창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병실 사람들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식사 중이었다.

병원 복도가 잠시 웅성웅성한가 싶더니, 산타가 왔다. 커다랗고 빨간 선물 꾸러미를 어깨에 둘러맨 산타는 덩치도 크고 배도 살짝 나와서 영판 산타였다. 


" 허~허허허. 메~~~리 크리스마스~"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산타가 나눠주는 선물을 받았고, 이내 행복해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차례. 

"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선물을 받은 엄마 앞에서 산타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 어마어마, 이기 누고. 어머야, K 아이가~"


병원 측 이벤트인 줄 알았던 병실 사람들도 깜짝 놀라며 즐거워했고, 기대 못한 아들과의 깜짝 만남에 엄마는 반가워서 눈물을 흘렸다. 이벤트 대성공! 

한껏 흥이 오른 병실 사람들은 아침 식판을 정리해놓고 한바탕 파티를 벌렸다. 안쪽 이모님께서 빨간 국자를 들고 선창하자, 병실의 환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일어나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도 질세라 일어서서 엉덩이를 흔들흔들, 팔을 좌우로 흔들흔들. 

나는 그런 엄마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부축한 채 흔들흔들.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일상은 이어지고, 우리는 그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이 세계를 알기 전의 나는 생각했다. 

누워서 눈만 깜빡이고 숨만 쉬는 삶은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곳에도 삶이 있었다. 똑같은 보통의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몸의 기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 보호자들이 그 삶을 여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무엇 하나 혼자 할 수 없고 그저 웃어만 주는 거구의 아들인데, 살아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엄마.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몸 상태와 간병 스트레스에 악다구니를 하며 비수를 꽂고 돌아서면 괴로워서서 가슴 치며 후회하는 보호자. 

신혼에 쓰러져 버려 그 충격과 상실감에 삶을 놓고 게임만 하는 와이프, 그런 와이프를 정말 매일매일 찾아와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편.

연로하셔서 딱히 뭘 해주지도 못하고 투닥투닥 거리지만 꼭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


그들 앞에서 그 누가 ' 저 사람은 차라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몫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삶의 가치를 내가 논하는 것은 굉장한 오만이고 그것은 이미 판단의 영역을 뛰어넘은 일임을 이제는 안다.

비록 그것이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자식들조차 잘 찾아오지 않는 노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다만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랑을 발견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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