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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Dec 09. 2023

번지 점프를 하다.

_돌이켜보면 새로운 세계로의 뛰어듦.


"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대도, 결국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기 때문이라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중.





세계 최초 번지점프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엔딩 신을 찍은 곳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번지점프를 했다. 


카와라우 번지 센터가 있는 퀸스타운은 매년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왠지 모를 설렘과 긴장으로 한껏 상기된 관광객들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있어 아름답고 여유로운 느낌의 도시,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을 비롯한 다양한 액티비티. 공기 중에 동동 떠다니는 설렘과 긴장 속에 나도 뉴질랜드 여행 전 계획한 바를 떠올리며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3일을 고민했다. 깔끔하게 포기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다. 평생에 한 번을 해본다면 다른 곳은 싫고 번지점프의 발상지인 뉴질랜드여야 했다. 그래서 결심을 굳히고, 거금을 결재한 후 카와라우 다리 위로 올라갔다.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긴장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사실에 상기되어 있었다.

번지점프대가 설치된 카와라우 다리는 카와라우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 아래로 에메랄드빛 강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그 자체로 굉장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게다가 에드 시런의 'I see fire' 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영화 호빗 엔딩 신에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듣는 순간 반해버렸던 노래다.  마침 호빗 촬영지가 뉴질랜드라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그 노래를 계속해서 들었는데, 장비를 착용하는 동안 그 노래가 나왔다. 이런 멋진 우연이! 기분이 한껏 고조된 나는 완벽한 순간을 위해 번지점프를 할 때도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번지점프 장비는 앉은 채로 착용한다. 장비를 갖춘 후 안내에 따라 엉덩이를 끌며 천천히 점프대로 이동했다. 발을 묶은 채로 좁다란 발판을 딛고 서야 한다.

 '끙차~'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정말 아찔했다. 발판이 겨우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놓을 정도로 좁아서 더 그랬다. 바람도 부는 데, 까딱하면 제대로 뛰기도 전에 발판 옆으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 큰일 났네. 나 이거 못 뛴다. '

' 어떡하지. 비싼 돈 주고 이거 왜 한다고 큰소리쳤지. ' 

다리 왼 편에는 친구들을 포함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잔뜩 들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 생각해 보니 여기서 겁을 먹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고, 뛰려고 올라왔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겁내기를 멈춰야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심호흡을 했다.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 진화 파이팅! " 큰 소리로 외치며 두 발을 힘차게 구르고 두 팔을 쫘악- 펼쳤다.

몸이 기우는 순간, '이런, 이제 못 돌이키는 건가. 이대로 떨어지는 건가.' 

머리가 강물을 향해 중력 가속을 받는 순간 그 공포감은 어마했다. 

늘 스스로를 수식하는 '날고 싶은'의 의미가 단순히 물리적인 데 있지 않지만 어쨌든 날아보았다.

눈물이 다 났다. 무섭기도 했고 그걸 이겨낸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뛰기 전의 나와 뛰고 난 후의 나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만 같은 기대감이 가득했다. 일찍이 만들어뒀던 블로그를 여행 블로그로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뉴질랜드 여행 이후로 그 해 안에 두 번이 세계 여행을 더 계획하였으며, 영어 공부도 그림도 이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 끝에 어머니의 간병을 시작했고, 그날 엄마가 쓰러졌다는 동생의 전화 이후로 자그마치 8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 15년의 배낭여행에서 얻은 체력과 시간 관리력, 판단력, 문제해결력, 나의 전공, 모든 것을 갈아 넣은 시간. 최고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엄마와 함께한 시간.


돌아보면 저 때의 번지점프는 새로운 세계로의 뛰어듦이 아니었나 싶다.

좁다란 발판 위에서의 망설임은 코앞에 성큼 다가온 새로운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그때의 내 눈물은 자유롭고 화려하게 살아왔던 삶과 이별하고 한 시절을 보내야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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