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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Oct 05. 2023

이혼한 사람들끼리 더 어색한 건

나도 다른 사람들이 왜 이혼하는 건지 모른다니까요

어느 오후엔가 집에 와있던 딸이 갑자기 바다에 가자는 얘길 했다. 


하루에 열수십 곳을 더 가자고 하는 딸의 말에 응, 그럴까?라고 말하는 건 그냥 습관이다. 하필 그 말은 진짜였는데 나는 또 콧노래 부르듯 그럴까? 하고 대답한 후 곧 잊었고 딸은 그 이후 한 시간이 넘도록 줄곧 내 입에서 이제 출발하자는 말을 기다리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이나 이모한테 물어본다는 말로 잠시 딸을 달랜 후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저녁에 따로 약속 없으면 바닷가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한 친구가 연락을 받고는 이내 별 고민 없이 동행하기로 해줬다. 


최대한 담백하게 써놨지만 사실 딸은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면 불안해한다. 외가로 돌아가는 날은 다음 날이지만 해만 저물기 시작하면 갑자기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생떼를 쓰고 울기 시작한다.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는 날이라고 얼러주면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딸이 바다에 가자고 떼를 썼던 건 그 연장선이었겠지. 


ㅇㅇ이모가 같이 가기로 했다는 말에 딸은 신나서 옷도 자기가 직접 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예전엔 이모 얼굴만 봐도 울더니 애들은 참 변덕스럽다. 


친구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잠들었던 아이가 깨자마자 어두워진 바깥을 둘러보곤 울기 시작했다. 꼭 이런 시간에 아빠와 헤어진다. 지금 이모랑 삼촌 기다리는 거야. 내 말에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다시 두리번거렸고 마침 친구는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차에 탄 친구는 딸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고 딸은 새로 산 목걸이와 빨간색 립밤을 이모에게 자랑했다. 서로 액세서리와 화장품을 보여주는 모습은 30년 가까운 나이차와 상관없이 여자들끼리만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아빠가 채워주기 쉽지 않은 부분이겠지.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백미러로 창 밖을 보는 친구에게 남편은 또 집에 있냐 물었다. 그 친구 남편은 항상 그랬다. 마지막으로 본 게 반년 전이었던가. 유쾌하고 활동적인 친구와는 달리 외출을 싫어하고 내성적이었다. 


좀 자주 나오라 그래, 너무 안 나가는 것도 습관 돼. 전에도 혼자 빠지고 친구만 달랑 왔었다. 그때도 내가 비슷하게 툴툴거렸더니 친구는 멋쩍게 웃기만 했었다. 


이혼했단다. 어? 친구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석 달 전일 텐데 머릿속 계산기가 엉켰다. 애들은? 중학생쯤 됐었던가. 지금은 아빠집에 가있단다. 여기서 꺾이면 장례식 분위기로 바다까지 가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결혼생활 참 어려운 것 같다, 그치. 다급함이 묻어나는 내 목소리에 친구는 힘없이 웃으며 동의했다. 그래도 애들이 어느 정도 커서 아빠랑 지내도 되나 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봐주셔. 아 그럼 편하지, 가끔 찾아갈 정도 사이는 돼? 벌써 다른 여자랑 살고 있어. 어? 


대화의 기술 같은 제목의 책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라고 만든 책이겠지. 좀 읽어둘걸. 침묵이 내린 차 안에서 바다로 가는 동안 남은 내내 후회했다. 


늦은 밤 도착한 바닷가엔 다행히 사람들이 많아 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딸이 불꽃놀이를 터뜨리고 모래 범벅으로 변해가는 동안 나와 친구는 번갈아가며 딸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찾아와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친구와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딸은 너무 재밌어하며 다음에도 이모랑 또 오자고 해맑게 말했고 나는 그저 조용히 웃어주며 속으로는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이게 참 어렵다. 나 역시 이혼을 겪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혼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종종 결혼은 판단력 부족, 이혼은 인내력 부족,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라는 농담을 던지곤 하는데 큰 틀만 가까스로 비슷하지 들어있는 내용물은 너무 다르고 이를 해석하는 당사자들도 너무 주관적이다. 


내 경우에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누군가에겐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원래 그런 거라고 넘기는데 내 입장에서는 근본부터 이해 안 되는 부분들도 많다. 외부에서 볼 땐 본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 덩이로 묶으려는 지도 모르나 당사자의 일은 당사자만 알 수 있다. 


너도 이혼했어? 나도 이혼했어. 너랑 나랑 이제 같은 사람이야. 하하호호. 


세상이 이렇다면 얼마나 살기 편할까. 하긴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우린 서로 말이 없었고 친구를 집 앞에 내려다 주며 우린 서로에게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다음 날 딸은 일어나자마자 이모가 어딨는지 물었다. 집에 갔지. 그럼 다음엔 이모랑 놀이동산도 가고 싶단다. 그래, 다음에 한번 물어볼게.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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