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요즘 부쩍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속에 은근히 깔려 있는
“너도 이젠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속삭임이
문득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세월은 어느새 知天命을 지나
耳順의 문턱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30대에는 집 한 채 마련하느라 허리를 졸랐고,
40·50대에는 딸아이의 병원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야 내 삶에도 작은 여유가 찾아오나 싶더니,
아내의 알뜰함이 나의 사소한 호사를 가뿐히 눌러버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삶이 정직하게 흘러온 증거일 것이다.
늦둥이 아들아이의 교육비,
아직 끝나지 않은 딸아이의 치료비,
그리고 잘 나가는 아내에게 기대 살아가는 지금의 나.
그 모습을 떠올리면
투정이나 불만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오랜 세월 끝에 마련한 집 한 채는
스스로에게 남겨준 마지막 자존심 같아
조용히 마음을 붙들어 준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업으로
후반전의 문을 두드리려 하지만,
살아온 시간들이 어느 순간부터
내 곁에서 하나둘 퇴색되는 듯해
문득 허전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소리쳐보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이
씁쓸함만 길게 따라온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부질없는 때가 많았다.
잘 나갈 때 조금만 더 돌아봤다면,
조금만 더 사람들 사이로 다가갔다면
달라졌을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동료, 가족, 지인들…
그들은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동기생 한 사람이 건넨
따뜻한 배려 한 조각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그 작은 정성 하나가
주저앉았던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아,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그 순간, 오래 굳어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니, 반드시 이루어낼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주는 두려움보다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없다.”
그 말을 되새기며
남은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보고자 한다.
폼 나는 노년이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낡아가는 마음 대신
다시 걸어보려는 용기를 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유월에,
다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