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교수를 예찬하며
지난 11월 8일부터 10일까지의 3일간은 가슴 가득 가을의 정취와 친구의 진심이 물결쳤던,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캠퍼스까지, 인생의 가장 순수한 순간을 함께했던 오랜 벗, 이병욱 교수가 베푼 느닷없지만 따뜻했던 초청에 기꺼이 응하여 홍천 '마리소리골'을 찾았습니다.
가을빛을 짊어진 길, 우정의 서막
서울에서 홍천 마리소리골까지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뜻밖에도 병욱 친구의 아내인 황*애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로 임*걸 선생님과 함께 편안하게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단풍의 향연은 노랗고 붉은 각양각색의 색상들이 산속 깊은 곳 굽이굽이까지 스며들어 시야뿐만 아니라 가슴속 깊이 가을의 정취를 아로새겼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어 그 서늘한 가을바람과 따뜻한 햇빛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오랜 벗을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자연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젖었습니다.
마리소리골에 도착하여 친구가 거주하는 '본채'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30여 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묘한 감회에 젖곤 합니다. 사실 병욱 친구가 처음 이 깊은 산속, 인적 없는 '밭 한 떼기'에 집을 지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솔직히 친구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었기에, 나는 친구에게 "야, 인마! 너 미쳤느냐? 왜 이런 곳에 집을 지으려고 해?"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황무지였던 땅이 예술과 문화가 깃든 마리소리골로 변모한 것을 보니, 시대를 앞서간 친구의 혜안과 굳은 신념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당시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나는, 친구를 향한 우정으로 이윤을 따지지 않는 집을 지었습니다. 내가 쓰던 가설재와 현장의 남는 자재들을 아낌없이 활용하고, 노임은 직접 지불하게 하여 마치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모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견적서나 계약서는 아예 없었습니다. 오로지 친구를 향한 신뢰와 애정으로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렸던 그 집. 그 본채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중학 동기와 대학 동문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우리의 굳건한 우정을 상징하는 기념비와도 같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30년간 변치 않는 삶과 예술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가장 큰 보람이자 자랑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토요일이면 만나 산행을 합니다.
첫날밤, 우리는 30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병욱 친구의 삶과 그가 직접 작곡한 음악들을 기타 선율과 함께 듣는 시간은 단연코 이번 방문의 백미였습니다.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와 예술혼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순수한 감동과 영감을 되찾았습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그의 깊이 있는 통찰력은 단순한 '교수'를 넘어선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교과서에도 실린 '검정고무신' 그리고 **'오 금강산'**은 매번 들어도 심취하게 합니다.
둘째 날은 고교 동기인 김*택과 40여 년 만에 시애틀에서 잠시 귀국한 그의 동생 부부가 합류하여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우리는 홍천강의 발원지이자 홍천 9경 중 3 경인 미약골로 트래킹을 나섰습니다. 촛대바위 아래 개울가의 갈대 군락과 선녀탕 등은 말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였습니다. 아쉽게도 2구간에서 출입금지 구역을 만나 하산해야 했지만, 시간이 남아 인근의 생곡저수지 둘레길을 대신 걸으며 가을의 절경을 놓치지 않고 만끽했습니다. 점심은 이 지역의 명소로 유명한 검산 막국수집에서 나누며 소박하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음악과 해박함이 빚어낸 취한 밤
둘째 날 저녁에는 박물관에서 이병욱 교수와 황*애 선생님의 지도로 사물놀이 실습에 흠뻑 취했고, 밤에는 마리소리골의 토굴에서 코냑을 기울이며 깊은 이야기 속으로 침잠했습니다. 이병욱 교수와 그의 아내 황*애 선생님의 현란한 기타 연주는 밤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빛났습니다. 전직 *BS 부사장이셨던 임*걸 선생님의 해박한 해설과 지적인 대화가 더해져, 그 밤은 웃음과 노래, 그리고 깊은 지혜가 가득한 만찬의 장이었습니다. 밤새 이어진 취기 속 대화와 웃음은 수십 년 우정의 역사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날 아침, 이병욱 교수가 2015년 초 작곡한 오페라 **"초희"**를 보면서 가슴이 멍했습니다. 초희의 삶처럼 큰 극장에서 정식으로 발표를 못 하고, 원곡에 못 미치는 약식으로, 어울리지 않는 작게 발표한 것이 친구에게나 나에게나 모두 안타까웠습니다.
이병욱 교수가 자신의 삶을 바쳐 일군 마리소리골의 정점에는 바로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이 있습니다. 홍천군 서석면 마리소리길 207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그가 오랫동안 수집하고 기증받은 악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대지 2 ,470 m 2를 이병욱 교수가 홍천군에 기부채납하고, 연면적 517.92 m 2 규모(지상 2층)로 2006년 6월부터 2007년 11월 6일까지 약 1년 반에 걸쳐 완공한 이 박물관은, 이 교수의 예술에 대한 헌신과 지역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웅변합니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터전을 문화 공간으로 승화시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나눈 진정한 실천가입니다.
마리소리골에서의 짧은 시간은, 오랜 친구의 예술가적 삶의 깊이와, 그 삶의 토대가 된 우리들의 변치 않는 우정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이병욱 교수, 그리고 그의 삶과 예술을 지켜주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 특별한 우정의 선율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마음속 깊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