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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리고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집니다.”

by Pelex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적은 조용한 편지.”

1. 그리운 어머니 전(前) 상서(上書)

어머니,
당신을 부르면 칠순이 넘은 제 나이에도
여전히 가슴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당신을 떠나보낸 지 벌써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머리가 희끗한 노년이 되어서도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만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저릿해오니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주말 새벽, 무엇에 이끌린 듯
고향 가는 버스에 몸을 싣던 날들이 선명합니다.

그저 어머니 얼굴 한 번 뵙겠다고 길을 나서던
그 새벽 공기가 지금도 코끝에 닿는 듯합니다.

제가 도착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내색 한번 없이 반겨주시던 어머니.

며칠 전부터 자식 주려고 챙겨 두신 것들을
두 손 가득 들고 나오시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쌀이며 고구마, 검은콩, 들기름, 고춧가루….

트렁크와 뒷좌석이 꽉 차 더 실을 곳이 없어도
어머니는 차 창문을 붙잡고 말씀하셨지요.
“김장은 하지 말아라. 내가 택배로 부쳐주마.”

나는 이미 칠순을 넘긴 어른이 되었는데,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한
‘물가에 내놓은 아이’였나 봅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깊은 강 같은 분이셨습니다.
서운함도, 속상함도 자식들 앞에서는 늘 웃음으로 덮어두시던 분.

작은아들이 바로 옆동에 살아도
“며느리 눈치 보인다” 하며
팔순이 넘도록 홀로 지내시던 그 마음….

그 깊고 외로운 배려를 이제야 헤아립니다.

저는 원래 말이 적고 무뚝뚝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만큼은 이상하게
어머니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군요.

어머니는 제 말을 조용히 들어주셨고,
저도 마음속에 묻어둔 말들을 아이처럼 쏟아냈습니다.

그 밤이 우리가 나눈 마지막 긴 대화가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돌아보면 해드린 것이 너무나 없어 부끄럽습니다.

젊은 시절,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며
자식들 학비를 마련하시던 그 고단한 뒷모습을
저는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습니다.

고향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아립니다.

우리 논도, 밭도, 뛰놀던 산도
이제는 아파트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정작 저는
“예쁜 2층 집 지어드릴게요”라며 호언장담했건만
그 약속 하나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해드릴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이제는 영영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정말 많이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어
이렇게 가슴 시리게 그리워할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큰 축복이라는 것을요.

저는 오늘도 그 그리움으로 하루를 버팁니다.

그리워할 어머니가 계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은 생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어머니.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서운해하지 마시고,
부디 울지 마십시오.

어머니가 제게 보여주신 마음 그대로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마음 품으며
남은 생을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당신이 깊이 그립습니다.

2. 형제들에게 보내는 글

여보시게들.

살다 보면 마음이 괜히 조금씩 어긋날 때가 있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그 침묵이 오해를 낳기도 하고 말일세.

나 역시 섭섭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야.

하지만 오늘 이 글을 빌려
내 마음을 조용히 정리해 보네.

“내가 불편했던 것들을,
이제는 말없이 묻어두겠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버거운 시간들이 있었을 테고,

차마 말 못 할 사정들도 많았을 테니까.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내 손을 잡고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라”라고 당부하셨지.

그래,
그 당부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맏이로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네.

하지만 여보시게들.

나이가 드니
몸도 마음도
어느덧 비워내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네.

이제 와 깨닫는 건,
억지로 붙잡아 두는 것만이
우애가 아니라는 걸세.

같은 자리에 앉아
하하 호호 웃지 못해도

서로의 안부를 마음으로 빌어주는 것 또한
깊은 우애라는 것을 말이야.

그저 자네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프지 않고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네.

우리가 예전처럼
한자리에 모여 크게 떠들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서로의 삶터에서
조용히, 그리고 무탈하게 지내는 것.

나는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우애라 생각하네.

부디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잘 지내시게.

그것이면 족하네.
정말로,
그것이면 충분하네.

3. 마치며

어머니를 떠올리며 쓰는 글은
언제나 조용한 울림을 남깁니다.

떠난 분을 그리워하며,
또 남아 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며
펜을 놓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가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부드럽게
이 하루를 건너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움이 남긴 온기를 품고,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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