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라 Jan 12. 2024

부도가 난 이태리 업체

저희 회사가 새로운 사업군을 인수하여 판매망을 정립하는 시기, 어느 산업 소재 수입 판매 전문 이태리 업체 사장님이 직원 3명을 이끌고 저희 유럽법인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여 인연을 맺은 후 수년간 사업을 성장시키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초기 수년간은 계획대로 이태리 시장 판매가 순조로이 진행되었고 매출도 매년 신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은 그동안 집중하였던 산업소재 수입 판매에서 벗어나 제조업에도 눈독을 들여 특정 아미노산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제조설비에까지 투자하여 사세를 확장하려 하였고 관련 전시회에도 지속적으로 참가하여 제품 홍보 및 회사의 비전을 고객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신규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는 기업 영속성을 위한 당연한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회사로부터의 대금 지급이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유럽 대다수의 업체들이 만기일보다 1,2주 늦게 대금상환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초기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결재 지연일 수가 길어지고,  건수들도 늘어나기 시작하자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가 비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그 영업직원 거래처에서 부실채권이 한번 발생하면 (거래처가 부도나면) 그 영업 직원의 커리어는 끝장난다"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실제로 부실채권으로 인해 고초를 겪는 경우를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제 지연 움직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예정된 제품 배송을 전부 중지시키고 대금상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험한 대화까지 오가게 되었습니다. 지연된 대금은 찔금 찔금 입금되기는 했지만 대금회수가 완료될 때까지 제품 공급을 중단했고 다른 공급자들도 비숫한 액션을 취했습니다. 이렇게 제품 공급이 중단되니 그 회사의 현금 흐름은 계속 나빠졌고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부도의 주원인은 예상한 바와 같이 무리한 아미노산 제조 설비 투자였습니다. 이 투자를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예정보다 공장 가동이 지연되어 현금 흐름에 차질이 생긴 것이고 이 때문에 기존 비즈니스 대금 상환 지연 => 공급처들의 제품 공급 중단 => 판매 중단으로 인한 매출 급감이라는 현금흐름 악순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부도가 발생하면 부도 회사의 남은 자산을 매각하여 채권자의 채권비율에 맞추어 보상금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부도난 회사에는 자산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유럽의 경우 부도 회사 오너 개인 자산은 보호해 주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청산절차에 따른 보상금은 크지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받을 금액이 있더라도 청산 절차 때문에 몇 년은 소요됩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신용보험을 들고 업무를 하는 것입니다. 


부도 몇 달 후 이태리의 다른 회사가 저희를 방문하여 이태리 판권에 관심을 표명했는데 위의 부도난 회사 사장님이 이 회사의 Sales director로 취임하여 동행했더군요.  저는 부도를 내어 저를 곤란에 처하게 해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회사의 명함을 들고 거래를 하러 온 그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반면에 수십 년간 오너로 사업을 하다가 다른 회사의 직원 신분으로 저를 만난 그 심정은 어떻겠냐는 생각도 들어 약간의 연민도 느꼈습니다.  업무미팅중간 휴식 시간에 그 사장님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그 당시 투자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건강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후회되고 유감이다"라고 저에게 사과를 하더군요.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그분에 대한 마지막 기억입니다. 


사실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 부도 케이스는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느끼고 배운 것은 "방귀를 자주 뀌다 보면 결국 x을 싼다"라는 말이 있듯이, 결재가 점점 지연되고 그 건수가 증가하면 부도 가능성이 커진다는 알람이라고 간주해야 하고, 항상 신용 보험 한도 내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출 신장을 위해서는 신용 한도를 넘어서는 거래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다수의 신용 보험회사를 이용하여 한도를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의 경우 Atradius라는 다국적 신용 보험 회사와 대한민국의 K-Sure를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K-Sure는 수출 장려 정책 때문인지 한도 부여에 좀 더 유연한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전형적인 네덜란드 상인 Mr.Dann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