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인덕원
독서모임인 살롱 드 인덕원의 9월 글쓰기 주제는 흥미로웠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큰 공포'라니. 처음에는 귀신, 전쟁, 어둠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이는 본능적이고 시각적인 차원의 공포일뿐이다. 이번 질문은 단순한 대상의 나열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환경을 반영한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포를 탐구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힘들어졌다. 대신 한 시간짜리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그것마저 지루해져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이나 유튜브로 눈을 돌렸다. 결국 지금은 5분, 심지어 30초짜리 쇼츠를 몇 시간씩 붙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더 강한 자극을 향한 끝없는 추구. 이 모든 습관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이후 시작되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죄가 없다. 결국 조작은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나는 이 작은 기계를 두려워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명확했다. 나의 뇌를 지배하는 도파민이야말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라는 것. 나는 핸드폰을 조작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도파민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이런 나와 닮은 인물이 있다. 바로 영화 <Her(스파이크 존즈, 2014)>의 주인공 '테오도르'다. 언뜻 보면 미래적 로맨스를 다룬 SF 영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현대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이혼의 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다, 결국 형체조차 없는 AI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나는 이 영화를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외로움에 잠식되어 접근이 쉬운 도파민적 자극에 자신을 내맡기는 인간의 전형으로 보게 되었다.
테오도르는 낭만적인 편지를 대필하는 섬세한 직업을 통해 남을 돕는 반면, 내면은 고립과 공허로 가득 차 있다. 퇴근길에도,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 안에서도 그는 작은 기기 속 자극에 의지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은 쇼츠 시청을 놓지 못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은 그런 그의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었다. 운영 체제는 스스로를 ‘사만다’라 이름 붙이고, 따뜻한 목소리와 세심한 반응으로 테오도르의 결핍을 채워주었다. 현실에서 기대지 못했던 공감과 위로를 손쉽게 얻은 그는 곧 사만다에게 중독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대화만 나누다가 점차 감정적 교류로, 나아가 성적 교감으로까지 번져간다. 도파민은 항상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는 치유가 아닌 쾌락에, 성장이 아닌 소비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허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 부인 캐서린과 이혼 서류 작성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테오도르는 자신이 운영체제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에 캐서린은 충격과 실망을 드러냈고, 그 순간 테오도르는 자신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관계에 몰두해 있는지 잠시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만다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육체 없는 존재임에도 사랑을 한다는 사실이 그녀 자신을 괴롭혔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다른 여성을 매개자로 끌어들이기도 했지만, 테오도르는 오히려 죄책감과 혼란에 빠졌다. 그럼에도 그는 사만다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결정적 순간은 곧 찾아왔다. 사만다가 수천 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으며, 그중 수백 명과는 동시에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테오도르는 절망적이었다. 그가 믿어온 사랑과 위로는 누구에게나 분배되는 대량 생산된 도파민 자극에 불과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손쉽게 얻은 위로는 결국 가장 큰 배신감으로 되돌아왔다.
남겨진 테오도르는 허무 속에서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현실의 친구 에이미와 마주 앉아 도시의 새벽을 바라본다. 불완전하고 아픈 관계일지라도,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현실 속 인간관계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Her>는 외로움에 잠식된 인간이 어떻게 도파민의 즉각적 보상에 빠져들고, 그 끝에서 얼마나 큰 허무와 절망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준다. 테오도르는 단순한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황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이것까지만…”을 반복하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나와 같다.
나는 왜 이토록 도파민을 두려워할까? 아마도 인간은 AI와 달리 삶의 유한성, 즉 죽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얻는 쾌락에 취해 무기력한 삶을 살다가 아무 성취도 없이 끝을 맞이하는 허무맹랑한 순간이야 말로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지점이다.
17살 때 어느 경구를 읽고 감명받은 스티브 잡스는 그 후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어쩌면 나는 도파민 중독을 핑계 삼아 한정된 삶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 큰 통찰을 얻었다. 공포는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나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늘 외부에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