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읽어내는힘
언젠가부터 설명서 읽기가 귀찮고, 레시피도 꼼꼼하게 잘 안 본다. 하다가 막히면 하나씩 찾아 읽는다. 후루룩 훑었던 글 안에서 원하는 걸 한번 찾고, 두 번 찾는 건 제대로 한번 읽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근데도 그냥 내 맘대로 훑어 읽기가 편하고,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는 게 습관으로 굳어 버린 것 같다.
인계는 길게 주는 것도 싫고, 주저리주저리 길게 받는 건 더 질색이다. 손바닥만 한 카덱스를 F자로 훑어 읽고 다다다다 준비한 ’ 인계연습’ 이 어쩌면 내 문해력의 전부일지 모르겠다. 읽어내는 힘이랄 것 없이도 그냥 빨리만 읽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내가 달달 읽어 주는 것보다 인계받는 이가 한번 보는 게 더 빠르다. ( 그땐 그랬다. ) 어제 근무한 이에게 하루치만 줄 때는 마음까지 가볍다.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서일까? 경청은 온 데 간 데 없고, 나름 군더더기 말이라고 생각되면 시계를 보며 요점을 기다리는 건방진 행동을 보일 때가 있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필요한 말만 골라 듣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인계 인생 매듭짓고 나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쪼그려 앉아 아이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리고, 보드라운 얼굴도 쓰담으며 끄덕끄덕 “ 아아아~ ~했구나. ~ 랬구나 “ 올바른 듣기 방법을 배우고 , 또박또박 천천히 읽어주고 그림 이야기도 함께 나누며, 기분이나 생각까지 묻는 올바른 읽기 방법을 제대로 배운다. “ 엄마 어딨게? ” 두 손으로 가린 얼굴을 까꿍 하며 내보이는 까꿍 놀이는 두 아이의 문해력 시작이고, 자신을 보고 함박꽃 웃음 짓는 엄마 얼굴 자체가 말이고, 글이고, 세상을 만나는 시간일 것이다.
쓰인 글이야 읽으면 그만이겠고. 이해하고, 한 지문 안에 달린 너덧 문제의 정답 하나 고르는 게 문해력이라면 그건 너희 둘의 몫일테고, 엄마가 도울 수 있는 문해력은 도리도리 까꿍하며 보이는 활짝 미소, 아니면 촉촉한 봄비 맞은 꽃 한 송이에 맺힌 빗방울 한번 만져보고, 콩벌레 뒤를 밟고 어디 가는지를 묻고, “ 햇님이가 유치원 잘 다녀오라고 우리 노랑이 비추어주는구나 ” 지어낸 이야기로 그린반 가는 길에 나누는 몇 마디가 전부일 지 모르겠다. 문해력의 기초가 이런 거라면 참으로 좋겠고 너무나 감사하겠다. 이 시간들이 차곡차곡 너의 마음에 쌓이고 꼭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엄마 마음은 ” 엄마는 나를 사랑해 “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탄탄한 문해력을 쌓는 불씨가 될지도.
엄마 무릎 학교에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책에서나 저 부잣집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두 아이에게 그대로 따라 흉내 내겠노라 다짐과 목적을 항상 마음에 두고 책을 읽어주기를 이어오고 있다. 읽어주는 대로 고스란히 듣고,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보며, 이야기 도중 땡땡이다 물으면 절묘하게도 맞추는 첫째 아이가 있는가 반면, 듣는 둥 마는 둥 보이는 그림을 지적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묻고, 생각을 묻거나 질문이라도 하면 아니, 그냥 계속 읽으라며 찬물을 끼얹는 둘째가 있다. 책의 내용을 한번 짚고 넘어가려고 묻는 물음엔 그저 “ 똥 - . ” 똥이란다. 다 괜찮다. 괜찮아. 글을 만나는 태도는 첫째 나름, 둘째 나름 각자 개성대로 층층이 쌓아가고 있음을 믿는다.
읽는게 귀찮지 않으면 될 것이다.보자마자, 뜨악 놀라지 않으면 다행이고, 본문 따로 문제 따로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섞이지만 않으면 고맙겠다. 제 나이답게, 소통하고 무언가 읽고 재미있고 즐거우면 될 것이다. 필요할 때 찾아보고, 제 학년 교과서 읽어낼 준비가 되는 정도라면,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으로 아직은 충분하다. 아직은 괜찮을꺼야. 한다.
똑똑하고 넘치는 정보 바다 가운데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 번째는, 읽어내는 힘. 글을 읽고, 표정을 읽고, 마음을 읽고, 관계를 읽고, 결국에 세상을 읽는 힘을 주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