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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랄맘 Dec 22. 2023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다섯 글자

첫 번째, 정서자본금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끼고 모으라고 하신다. 진짜 아이가 필요로 할 때 “ 네꺼야. 뭐든 해봐. ” 멋지게 내어줄 수 있는 비장의 통장을 물려주라고 하신다. 나는 과연. 두 아이 이름 앞으로 붓고 있는 청약 통장과 15년 납입예정인 생명보험 저축이 전부다. 이것 말고는 진짜 뭐 하나 내놓을 게 없다. 외벌이 4인가족 우리는 뭘 해야만 두 아이에게 그럴싸한 이문을 남겨 줄 것인가?


어떻게.

수십 권의 책을 읽고 훑었다. 건강한데 공부도 잘하고, 모난 곳 없이 잘 크는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가 궁금했다.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오더라. ‘집’에서. ‘엄마’로부터.

내뱉고 찌르는 말 망치 안 꺼냈더니, 한 이불 안에서 간지럼 태우며 뒹굴다가 딩가딩가, 비행기 태워주다가 알라딘 책 슬슬 읽어주고 재웠더니, 콩나물이랑 다짐육 넣어 후추 톡톡 한 10분 익히고 갓 지은 밥 털어 맛간장 두 바퀴 반 돌리고 각자 숟갈로 쓱쓱 비벼 먹이고,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기를 한 10년 하니 육아 서적에 나오는 글들이 우리 아이들의 일상에서 보여지기 시작한다.


오늘도 샤워하며 아톰 머리를 만들고 너무 잘생겼다며, 콧노래를 부르는 저 아이 마음은 이미 우주 최고 영웅이다. 스스로를 흐뭇해한다. 받아쓰기 30점을 맞고도 태권도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한다며 배시시 웃는 속 편한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논리를 앞서고 그럴듯한 말꼬리를 물어 놀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신뢰하며 사는 게 감사하고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홉 살 인생이 바로 내 앞에 있다.


그런데 얘가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 제대로 알아듣고, 야무지게 질문하는 아이면 좋겠다.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 해석하는 독해력? 교과서를 읽어내는 교과력? 이 있다면 공부는 잘하고도 남을 텐데 내게는 하나도 없으니 그저 다른 걸로 도울 수밖에.


편치 않은 마음 정서를 가진 아이 문해력 독해력 교과력 모두 다 있다 한들 언제 어떻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볼 때마다 조마조마할 것 같아서, 아이의 정서, 느끼는 감정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기로 했다. 마음이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로 했다. 행복한 사람 옆에 가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내 옆에 항상 붙어 사는 우리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행복을 느끼고, 감사를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말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주기로 했다. ( 내가 듣고 자란 말만 안 하면 반은 성공이니 어렵지가 않았다. ) 아이는 엄마의 좋은 기분, 정서가 담긴 말을 통해 자꾸자꾸 그 마음 통장이 채워지는 중이다. 딱히 지적이지도 않고, 시사하는 것도 없고, 정치 사회 경제 환경 문화 예술 그 어떤 전문 분야에 관련된 고급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 와우. 브라보. 우리 애기 사랑해. 우리 애기들 배고프겠다. 따뜻하게 먹자. 엄마 뱃속에서 톡 튀어나와 줘서 고마워. 엄마가 책 백 권 읽어줄게. 우리 애기 이쁘지? ” 머 이런 게 90% 다. 아는 게 별로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근데 신기하고 감사한 건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모의 사랑이고, 부모의 정서적 언어임을 육아 강의에서 들은 바 있다. 간섭, 통제하는 일상적인 대화 말고, 우리는 아이와 눈을 보고 정서적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아이의 뇌는 경험 자체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양보와 나눔을 알게 하기 위해 양보하자, 함께 놀자, 말해주기보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 내 것도 한번 나누어 줘 볼까? 양보해 볼까? ’ 하는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내가 먼저 나누어 주는 모습을 그냥 보여 줬을 뿐이다. ” 엄마 꺼 우리 애기한테 나누어 줄게. ” 그랬다.


또래 아이들끼리 놀 때에 양보를 먼저 권유하고, 먹던 과자를 친구에게 조금 주자고 강요한 적이 없다. 주면 주고, 안 주고 싶다며 등 뒤로 감추면 그대로 말았다. 그 아이가 아홉 살 인생이 되더니 친구 준다며 색종이를 접고, 사슴벌레 미니어처를 준 친구에게 젤리를 줘야겠다며 덜 먹고, 고구마가 정말 맛있다며 사범님께 드린다고 가져가겠다는 작은 고마움에 보답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다. 이제는 과일 뼈다귀 발라 먹는 엄마까지 보이나 보다. 그거 먹지 말고 이거 먼저 먹으라며 제대로 된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는 고마운 장남으로 컸다. 감사하게도.


육아. 아이를 키운다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크면 다 할 것을 아직은 아이라 못하는 것들을 돕고, 섬겨야 할 작은 어른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들었던 게 전부다. 그냥 사랑해서, 소중해서, 감사해서, 정말로.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저 소중하게 다루어 주고 싶었다. 그랬더니, 육아 10년차가 되었더니 아이의 정서자본금이 불어나고 있다. 바닥이었던 나의 정서에도 온기가 돌고 감사가 차곡차곡 쌓인다.  


지금처럼 사랑 내음 물씬 풍기고 눈망울까지 웃고 있는 아이가 그대로 쭈욱 어른까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한번 더 안아주고, 웃어주고, 아 이쁘다 쓰담쓰담, 사랑한다 간지럼 태워 더 많이 웃게 한다. 우리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지금 딱 이때만큼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잃고 싶지 않아서. 다 너 잘되라고,사랑하니까 그런거라고. 자꾸 가르치고, 비교하고, 비난하고, 강요하고, 지시하고, 막말하지 않을 것을 앞으로도 다짐한다.


<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다섯 글자 > 첫 번째 이야기는 ’ 정서자본금 ‘이다. 이건 황금 토양과도 같아서 어떤 씨앗을 심더라도 깊게 뿌리내릴 것이며, 천둥 번개 비바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엄마 어릴 적 텅빈 마음통장도 자꾸 넉넉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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