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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Apr 11. 2024

룰라 밀러, 수원 매향 여학교에서 신 여성을 육성

여전도회를 조직하여 여성 전도인 양성

룰라 밀러 선교사(미라, 1870~1958)는 수원 매향 여학교 교장으로 헌신하며 나혜석 등 신 여성을 길러내었다. 여성 전도회를 만들어 한국인 여성 전도인 양성 등 37년을 한국에서 헌신한 선교사이다. 


그녀는 뉴욕 주 몽고멀트에서 태어났다. 1901년 북 감리회 선교사로 파송받아 내한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수원 및 오산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1901년 인천 웨슬리 기념관 건립 행사장에 참가하여 당시 행사에 천여 명이 참석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1903년~1905년 사이 오산에서 노블 선교사와 협력하여 오산 감리교회를 설립했다. 또한 1903년 이후 버딕 선교사와 함께 수원 남부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1907년 수원 삼일 여학교(현 매향 정보고) 2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학교 교사를 신축하고 6년제 보통학교로 승격시켰다. 그 결과 1910년 첫 졸업생으로 나혜석(최초 서양화가) 등 4명을 배출하였다. 삼일 여학교는 1902년 스크랜턴 여사에 의해 시작된 학교이다.


그녀는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여성 사경회를 인도하고 성경 공부를 실시하였다. 메리 힐만(수원과 인천에서 교육 선교)과 함께 강화 지역을 방문하여 여자 사경회를 인도하고 매일 성경학교를 지도하였다. 1916년에는 페리와 함께 여성 교육 및 수녀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1920년에는 여 선교회 조직에도 앞장섰다. 당시 독신 여성 선교사들이 여 선교회를 조직하여 한국인 자체 여자 전도인을 양성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교회사에서 전도가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를 1920년대로 본다. 전도 교육을 받은 여성 성도들은 짝을 이루어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안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도자 김지선 씨 기록)


또한 1920년부터 부녀자들이 집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가정 성경 연구과정>이 수원 전 교회에서 유행하였는데, 룰라 밀러 선교사가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여성 독신 선교사가 많아져서 그들이 거주할 가옥이 필요하게 되었다. 1905년 <갬블 홈>으로 불리는  선교사 기숙사가 건립되었고, 이 건물에 힐만, 밀러, 스나블로 등 여성 선교사가 거주하였다. 갬블 홈은 여선교사 기숙사로서 1905년 경기도 서지방 담당 선교사 케이블이 미국의 윌리엄 갬블 여사의 후원을 받아 건축한 것으로 선교사의 휴양 시설로도 활용되었다.


그 후 밀러는 후원금을 모아서 1926년 수원에 힐만 기념관(여성회관, 감리회 여자 기숙사로 활용)을 건축하여 여성 선교사들이 거주하게 하였다. 이 건물은 그녀의 친구인 힐만 양이 1932년 순직하면서 기부한 돈으로 건립한 것이다.


그녀는 1925년부터 인천 우각리 교회에 시무하다가, 1938년 귀국하였다.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58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LA 근교 마운틴뷰 묘원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이곳은 공주에서 평생을 헌신한 앨리사 사프(사애리시) 선교사가 안장된 곳과 동일하다. 수원 매향 여학교(현 매향 정보고)에는 그녀의 30여 년의 교장 활동을 기리는 <미라 교장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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