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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May 06. 2024

마티 잉골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 선교사

전주 예수병원 설립 및 이 땅에 딸기 보급

마티 잉골드 선교사(1867~1962)는 전주예수병원을 설립하여 전주 의료 사역을 시작하였고, 그 후 남편 테이트와 함께 농촌 선교에 헌신하며 28년간 이 땅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1867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르노아에서 태어났다. 1896년 볼티모어 윈스럽 여자의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고,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헌국선교사로 지원하였다.


1897년 9월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그녀가 인천에 도착할 때 미래 남편이 될 테이트 선교사가 마중 나왔다. 그녀는 전주 선교부에 배속되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적응하였다. 그리고 1년 후 1898년 11월 서문 밖에 초가 한 채를 구입하여 어린이와 부인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이것이 전주 예수병원의 시작이다.


그녀는 말을 타고 왕진을 다니며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서 섬겼다. 청결과 위생을 강조하며, 민간요법으로 악화된 환자들을 다시 치료하였다.  전주 예수병원은 1902년 해리슨에 의해 서양식 건물이 지어졌고, 1912년 30여 침상이 확보되면서 전주 의료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 전주 예수병원은 1935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다시 재건되었고, 해방 후 <전주 야소병원>으로 불리다가 다시 <전주 예수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 1947년 구바울(크레인) 원장이 종합 병원으로 추진하여 1954년 병원과 부속 간호학교가 보강되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선교회를 조직하여 해외 의료 선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1904년 안식년을 다녀온 후 1905년 9월 루이스 테이트(전주 서문 교회 설립자)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계속 환자를 돌보다가 1909년 포사이드 선교사에게 전주 병원을 인계하고, 남편의 농촌 순회 사역을 도왔다. 농촌을 순회하여 복음을 전하고 부녀자 성경 공부에 치중하였다.


또한 그녀는 전주 지역에 딸기를 보급한 선교사이다. 1905년 미국에서 다녀오면서 딸기 개량종 50여 종을 가지고 와서 전주 화산동 등에 보급했는데 이것이 현재 화산동 일대에 딸기 산지가 된 배경이다.


그녀는 복음을 전하는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소아 요리문답>을 만들어 보급했다. 교회 어린이들이 암송하는 책이 되었다. 그녀는 1910년 늦게 아이를 임신했으나, 무리한 탓에 사산아를 낳는 슬픔을 겪기도 하었다.


1925년 남편의 만성 심장병으로 인해 부부는 28년의 사역을 마감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플로리다 주 작은 호수 마을인 프로스트프루프에 정착하여 살았다. 남편 테이트는 1929년 소천하여 프로스트프루프 실버 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홀로 여생을 살다가 1962년 향년 95세로 소천하여 남편이 묻힌 묘지의 바로 옆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28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다>라고 기록되어 다.


2017년 전주 예수병원은 그녀의 일생에 대해 만화책 <불꽃같은 삶 마티 잉골드>를 출판하였고, 2018년에는 《마티 잉골드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현재 전주예수병원 로비에는 그녀의 흉상과 그녀의 기도문 (1897년 7월 18일 그녀의 일기에 있는 기도문)이 새겨져 그녀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나에게 무엇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다. 내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게 하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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