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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Oct 26. 2024

존 니스벳, 호남에서 교육자 및 목회자로 활동

목포 영흥 학교 교장 및 전남 농촌 지역 복음화에 헌신

존 니스벳 선교사(유서백, 1869 ~1949)는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헌신한 후 전남 남부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그는 1899년 애너벨(유애나)과 결혼하고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1907년 3월 부인과 함께 남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그는 남 장로교 선교 지역인 전주 선교부에 배치되었다. 이때 많은 교육 선교사가 내한하여 학교 교육을 통한 복음전도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이었다.


그는 전주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전주 신흥 학교 교사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08년 9월 해리슨 선교사의 뒤를 이어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1908년 학교 이름을 예수 학교에서 신흥 학교로 변경하고, 1909년 미국에서 재정 후원을 받아 2층 벽돌 교사와 기숙사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정식 사립학교로 인가받았고 고등학교 과정을 만들어 교육 범위를 확대하였다.


1911년 선교지를 목포로 옮겨 영흥 학교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1914년 학제를 개편하며 학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 후 교육 전문가인 커밍 목사를 목포에 청빙 하여 영흥 학교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는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다. 전주에서는 심방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서문 교회 당회에 참석하며 교회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목포에 거주할 시기 1913년부터 전남 함평, 장흥, 무안, 목포 지역을 순회하며 농촌 복음화열정을 쏟았다. 그가 순회 시무하거나 설립을 협력한 교회는 아래와 같다.


- 함평군: 월봉 교회, 영흥 교회, 향교 교회, 수호 교회, 순선 교회, 내교 교회, 석정 교회(1916), 가덕 교회(1923)

- 강진군 남성 교회(1913), 신풍 교회, 무영 교회, 축현 교회(1915), 서산 교회(1915), 만덕 교회(1922)

- 장흥군 삭금 교회

- 영암군 쌍효 교회(1916), 교동 교회(1918)

- 무안군 성암교회(1917), 구정 교회, 복길 교회(1921)

- 목포 교회(1914)


또한 노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11년 전라노회 설립 시 참여했고 1917년 9월 전남 노회를 창립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다. 전남 지역 교회가 증가하면서 전라 노회에서 분리된 것이다.


그는 1924년 4월부터 1년간 부인 애너벨이 헌신한 목포 정명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한 기록이 있다. 그는 1938년 70세의 나이가 되어 은퇴했지만 한국 성도들의 신사참배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지속 사역하였다.


그 후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당한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49년 소천하였다.


그는 훌륭한 인격자로서 정의에 앞장서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따뜻한 선교사였다. 농촌을 방문하며 복음 전파 외에도 한글 전파, 노동 인식 전환, 성차별 금지 등 사회개혁 활동을 전개하여 지역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0년 첫 부인 애너벨과 사별하고 1921년 6월 엘리자베스 라헬 워크(1886~1958)와 재혼하였다. 재혼 후 슬하에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유아 때 사망하여 광주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끝-


* 2번째 부인 워크 선교사는 1919년 내한하여 광주 선교부 총무 비서로 사역하던 중 니스벳과 결혼했다.


추가: 존 니스벳 선교사의 성장, 학교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여 추가 조사가 필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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