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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크로더스, 안동 복음화의 주역으로 40년 헌신

안동 지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 미스터 안동으로 불림

by 신재천

존 크로더스 선교사(권찬영)는 안동에서 복음을 전하며 40년을 헌신하였다. 그는 지역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 미스터 안동, 안동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미국 호하마 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1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내한 후 안동 최초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순직한 소텔 선교사(1909년 11월 장티푸스로 순직)의 후임으로 안동으로 배정되었다. 그는 소텔 선교사의 손위 동서이다. 그의 부인인 엘렌이 소텔 선교사 부인의 언니이다.


그는 안동에 부임하여 안동 및 영덕 지역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주일학교 육성과 전도에 힘썼고, 경안노회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0년 인노절 선교사와 함께 안동 금곡동에 임시 남녀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안동 경안 신학교의 시작이 되었다. 1925년에 건물을 신축하였고, 초대 교장으로 인노절 선교사가 되도록 협력하였다. 그는 1923년부터 경안 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1943년 5월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쇄될 때까지 20년간 교수로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에는 2대 경안 노회장을 되어 노회를 이끌었으며, 안동 등 경북 북부 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할 때 그는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총회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선 이원영 목사에게 세례를 주고 참 기독교인으로 육성하였다.


그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해방 후 다시 내한하여 한국 교회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 전쟁 때에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측면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52년 정년이 되어 은퇴하고 미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부인 엘라 맥클렁(권애라) 선교사는 교회음악 및 여성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녀는 피아노를 전공하여 안동 교회에서 반주자로서, 성가대 지휘자로서 활동하였고, 어린이에게 노래를 지도하는 등 안동 지역 음악 교육의 선구자로 할 수 있겠다. 그 후 안동에서 권태호 선생 등 근대 음악가가 많이 양성된 것은 그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끝-


*추가 : 존 크로더스 선교사의 한국 활동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여, 추가 조사 및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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