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사랑의 이해"ㅡ
나이 50대 중반이 된 나는 사랑에 무덤덤해지긴 했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앞에선 아직 설레인다. 사랑을 정의하라고 하면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사랑의 형태도 다양하고 각자 개개인의 사랑의 방법도 다르다. 풋풋하고 신선하며 가슴 설레였던 처음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젊었던 시절의 사랑도 나이 들어가며 좀 더 깊어진 사랑도 뒤늦게 찾아온 사랑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사랑도 참 복잡미묘한 것이 사랑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도 복잡하면서도 줄곧 답답한 사랑을 그려냈다.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소설과 크게 다르게 않다고 했다. 보통은 드라마를 보고 소설도 읽고 싶어지는데 읽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을 만큼 실망했다. 제목은 사랑의 이해인데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은행을 배경으로 여주인 수영과 남주인 상수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묘한 설레임과 동시에 엇나간 사랑이 답답했다. 왜 수영은 상수를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받아드리기가 힘든지 상수는 왜 그렇게 망설이고 생각이 많은 건지...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열심히 공부만 한 모범적이고 진지한 상수였다. 사랑을 선택할 때도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조심스레 다가서려고 한다. 그런 고민과 망설임을 수영이 우연히 보게 되면서 상처 받은 자존심은 사랑을 계속 엇나가게 했다. 사랑의 확신이 없으니까 약속 장소 앞에서 돌아간 거라며 마음을 닫고 밀쳐낸다. 상수가 뒤늦게 뛰어왔지만 이미 늦었다. 거기서 부터 둘의 출발은 어긋났다.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는 상처입은 남동생을 사고로 잃은 후에 아버지를 크게 원망하는 수영의 마음 안에는 남자들에 대한 불신도 남아있다. 아버지를 받아주고 함께 국밥집을 하는 엄마를 이해 못한 수영은 여전히 상처 입고 움츠려 있다. 은행 직원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이라는 자격지심과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처지는 상수를 밀어내며 거리를 둔다. 지친 상수가 자신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선 미경이와 교제를 시작할 때 그 마음이 이해되고 오히려 응원했다. 수영은 은행 청경으로 일하면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종현과 사귀면서도 내내 상수를 좋아했다.
멀리 할수록 두 사람의 마음은 더 간절해졌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은 결국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상수의 고백과 입맞춤으로 이어졌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고백까지 받았으니 이제 꽁냥꽁냥 사랑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왠걸 미경에게 이별까지 통보한 상수의 적극적인 사랑을 또 다시 거부한다. 모래성이 무너질까봐 자신이 먼저 무너뜨린다는 바닷가에서의 어이없는 수영의 고백처럼 자신의 선택에 미련없다며 말없이 떠난다. 상사이자 자신에게 잘해준 미경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고 배경 좋은 미경이와 헤어진 뒤 상수에게 다가올 어려움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우유부단하고 갈팡지팡하고 용기 없는 수영의 행동이 너무 답답했다. 사랑의 이해 따위는 필요 없고 둘만의 사랑만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교제를 시작 하면서 서로 잘 알기도 전에 종현과 한 집에서 사는 것도 마음은 상수에게 가 있으면서 단호하지 못한 것도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상수를 계속 뿌리치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처지가 딱한 종현이에겐 남동생에게 해주지 못한 미련과 연민의 감정이 확실한데도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수영은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맞지도 않는 반지는 억지로 끼지 말고 빼야 한다.
반지를 줄 때 상수에게 향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거절했다면 종현도 상처를 덜 받았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잘못된 관계였다. 어긋난 관계를 바로 잡으려고 애쓰는 상수만큼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면 수영의 사랑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드라마의 반전은 수영이 아버지의 외도로 남동생이 사고로 죽었다고 그토록 미워했는데 외도를 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였고 아버지는 오히려 그 진실을 막아주신 분이였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모진 말을 내뱉던 딸 앞에서도 묵묵히 참아내며 엄마를 용서하고 사랑을 지킨 아버지가 진정한 사랑꾼이었다. 왜곡된 시선으로 비뚤어진 수영이 마지막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두 남자를 포기시키기 위해 직장 동료와 하룻밤을 보낸 선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모든 걸 망치고 모두를 떠나보내면서 과연 자유롭고 홀가분했을까.
마지막 장면에 조용한 곳에서 카페를 하는 수영과 여전히 수줍게 마주 앉은 때묻지 않은 상수를 보며 이제 그만 힘들게 하던지 자유롭게 놔주던지 단호한 결단을 하기 바랐다.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이 답답한 드라마는 처음이라 몰입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청춘을 그려내지도 못하고 자존심이 강해 자기를 지키려는 태도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수영의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조용하고 온화한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하고 보이지 않는 상처와 낮은 자존감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 보듬어주며 마음껏 사랑했더라면 보는 이들도 시너지가 생겼을 텐데.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없었더라면 참 보기 싫었을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두 사람의 사랑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사랑하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갖다붙여 회피한다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후회와 연민. 상처만 남게 된다. 사랑에는 신뢰와 책임이 따르지만 청춘과 젊음이 있다면 아름답게 사랑하라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