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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팀 vs 모자 팀

by 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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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여행 때였다. 여행 팀에 두 모녀와 두 모자가 함께 했다. 두 팀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두 모녀는 그야말로 여행을 행복하게 즐겼다. 몸집도 키도 작은 엄마와 딸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꼭 잡고 있다. 자그마한 엄마는 딸 품에 폭 안겨서는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께 인사했다. 모녀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밝은 에너지는 주변 분위기까지 환하게 만들었다.

"어쩜 이렇게 다정한 딸을 두셨어요."라고 하면 "집에선 안 그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니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엄마와 친근한 딸에 애착관계가 강한 모녀임이 분명했다. 두 모녀를 보면서 엄마가 좀 더 젊으실 때 여행을 모시고 다니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다정하고 세심한 딸을 보니 엄마에게 무뚝뚝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암튼 복이 많으신 엄마였다.


반면 너무 다른 모자 팀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서로 친해져서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는데 모자의 아들은 제대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한 적이 별로 없었다. 쑥쓰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도 아닌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다. 무표정한 아들에 비해 엄마만 혼자 신이 난 것 같았다. 아들은 그저 엄마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만 할 뿐 여행을 함께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말이 무척 많은 엄마와 다르게 아들은 함께 식사할 때조차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식사만 하고 있었다. 남편이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엄마가 대신 대답하거나 단답형의 짧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자꾸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조용히 식사만 했다.


모녀의 분위기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자의 엄마는 아침마다 화려한 의상에 목소리 톤도 높아서 주변 사람들과 서스름없이 인사하며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경관의 이태리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에 억지로 끌려온 사람마냥 엄마는 의기양양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고 아들은 뒤에 쳐져서 엄마와 뚝 떨어져 다니는 아들을 보니 '왜 왔을까?' 싶었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딸이 없어서 이다음에 외로울 거란 말을 많이 듣는다. 그만큼 딸과 아들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다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다정다감하고, 키우는 재미가 다르다고 한다. 딸이라고 모두 같은 건 아니지만 보통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자매들 중에 나만 딸이 없어 딸들과 데이트 하고, 호캉스 가는 언니들이 가끔 부럽지만, 없는 딸을 만들 수도 없고 아들만으로 만족한다. 아들들은 딸들처럼 세밀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 엄마의 마음을 크게 헤아리거나 말과 행동으로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한다. 카톡을 해도 질문형에 단답형이다. 이유가 없을 땐 카톡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든든한 아들 역할을 해내며 부모의 기쁨이 되어준다. 츤데레처럼 표현하진 않아도 그 마음을 느끼고 허물없이 감정을 나눈다.


아들과 단둘이 여행하진 않았어도 주로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다. 다닐 때마다 즐겁게 대화하며 편안하다. 평소엔 작은아들과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다. 남편은 출근하고, 큰아들은 바쁘고, 작은아들이 방학이나 시험 끝나고 한가할 때면 의례히 영화를 같이 보고, 점심 먹으면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말이 많지는 않아도 엄마와 팔짱도 끼고 어깨도 감싸주는 다정한 아들이었다.


딸들처럼 세심하게 엄마 마음을 헤아리진 못해도 그 정도로만도 만족하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형도 아니고, 기대치를 낮춘다. 그게 마음이 더 편하다. 모자 팀을 보면서 아들과 둘이 여행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정한 모녀와 같지는 않더라도 모자 팀의 모습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제 결혼하면서 더 기회는 없어졌지만 어렵고 불편하고 따로국밥인 아들이 아닌 언제든 엄마가 손 내밀면 잡아줄 존재란 확신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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