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촌지의 기억) 한국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계단을 올라 내 교실 쪽으로 몸을 꺾었을 때, 옆반 담임선생님이 배시시 웃음을 앞에 서있던 여인에게 보이며 하얀 봉투를 양복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은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를 법의 감시하의 타의적 공적관계로 만들어 버린 화근.
내 아이가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이 타의에 의해 다스려버리게 된 그 원흉 중 하나였던 것이다.
——
현재 학기말이 다가오며 방장 엄마가 현금기부를 받고 있다. 담임, 보조, 음악, 체육 하물며 교생선생님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반 전체의 이름으로 아마존 현금쿠폰을 준다는 의견인 것 같다.
일 년 동안 지내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도 다 같이 모아서 샴페인과 소정의 선물을 드렸고, 생일에도 꽃다발을 드렸다.
다 같이 모으니
1. 더 좋은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장점도 있고,
2. 바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부모들도 걱정이 없다. 말 그대로 자체적 기부이고, 선물은 반의 모든 아이들의 이름으로 보내진다.
무시무시한 법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은 이렇게 민주적으로 조율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1. 아이들이 감사를 표현할 권리와
2. 아이들이 특혜계층 없이 평등할 권리를.
한국은 내 아이만을 위한 이기주의를 내세우다 아이들이 선택할 권리를 놓쳐버린 게 아닐까?
개인주의적인 전통을 가진 영국에선 적재적소에서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는데, 공동체의 미학이 뿌리 깊었던 한국에선 상부상조를 강조해야 할 자녀교육에서 괴리적인 개인주의가 고개를 드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