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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Jul 14. 2024

떠나고 싶지만 머물고도 싶어

<여인의 향기, 1993>

6월에 접어들면서 청사 지하 1층에 있는 구내식당 공사가 시작되었다. 조리실을 신식으로 꾸미고 식사하는 공간도 넓히고, 아무튼 지금보다 더 쾌적하고 널찍한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확보한 시간은 대략 석 달 정도. 물론 이것은 단지 예상일 뿐이었고, 6월 초 기존 콘크리트 벽을 허물었던 기초공사의 진척도나 그 이후 진행상황을 보아하니, 계획대로 8월 말쯤에 공사가 끝나길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함께 있을 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상실의 결과 뒤늦게 아쉬워하는 것. 비단 그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당분간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 불편과 아울러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 주변 여러 식당들을 전전해야 하는 피로감 또한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끼니 해결이라는 공통의 방향성 아래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들.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상경했다가, 적지 않은 세월을 대학가 주변에 머물며 생활하다가, 마침내 서울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 언젠가. 세상에 태어나 사회화를 거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은 참 많았을 텐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고민의 깊이만 더해갔던 경우들을 따져보다 보니 유독 그때가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쨌든 서울에 왔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울 어디에 궁극적인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집, 빈곤에 익숙해지는 매너리즘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가는 심신이 보내오는 위험 신호에 일단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하는 미심쩍은 바람. 지난날을 놓지 못하는 뿌리 깊은 미련과 다가올 날에 걸어볼 수밖에 없는 한 가닥 희망이 얽히고설켜 휘청였던 날들. 방향성이 완전히 정반대인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이쪽인지 저쪽인지 결정을 내리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웠다.


여기 한 편의 옛날 영화가 있다. <여인의 향기>. 크리스 오도넬(찰리 심스 役)과 알 파치노(프랭크 슬레이드 役)가 열연했던 이 영화 속에도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의 문제들이 녹아들어 있다. 본교 이사회에 아부를 일삼는 대가로 값비싼 재규어를 증정받아 몰고 다니는 교장. 어느 날, 꼴사나운 그를 골탕 먹인 세 학생들을 직접 목격하고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할 처지에 놓인 찰리. 해당 학생들의 이름을 대면 퇴학 대신 교장의 하버드 진학 추천서를 거머쥘 수 있는 양극단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동료 학생들을 고자질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에 기인한 신념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밝히면 하버드에 갈 수 있는 달콤한 유혹 사이에서 고학생 처지의 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군대 내 수류탄 사고 때문에 시력을 잃게 된 퇴역 장교로 조카네 집 바로 옆 작고 허름한 장소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건조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중년의 프랭크. 그를 돌봐주던 조카네가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삶을 마감하기로 한 자신의 마지막 선택을 머릿속에 담고서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다. 전등이 무소용인 24시간 암흑 속에서 오롯이 혼자인 삶을 살았던 프랭크는 과연 뉴욕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때 고향에 갈 차비를 마련해야 하는 찰리는 교내 알림판을 살피다가 추수감사절 연휴에 친척을 돌봐주길 원하는 한 구인 광고를 보게 된다. 선량하고 순수한 고등학생 찰리와 괴팍하고 붙같은 성격의 퇴역 장교 프랭크의 만남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고, 며칠 동안의 연휴를 틈타 한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준비해 왔을 뉴욕 여행에 동행을 하게 된다. 살아온 세월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것이 서로에게 이질적이기만 한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마침내 어떤 식으로 상대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감동이 있다. 고등학생 찰리의 나이에 더 가까웠던 시절의 나, 그리고 이제는 어느덧 프랭크에 더 가까워진 나이를 먹은 나. 극 중 인물들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나 또한 세월의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시간을 건너온 지금,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영화임에도 보고 난 느낌은 사뭇 달랐다. 비슷한 재미와 감동 이외에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부터 프랭크는 자신이 계획했던 바를 충실히 이행한다.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들러 값비싼 음식을 시켜 먹으며 농담처럼 찰리에게 건넸던 말들.


프랭크: 사실은 말이야. 계획을 수행하려면 도울 사람이 필요해. 

찰리: 계획이 뭔데요? 

프랭크: 너도 알 권리가 있지. 그건 계획이라기보다는 아주 즐거운 여정이지. 일급 호텔에서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고급술을 마시고, 형을 만나지. 가족만큼의 사람은 없잖아. 그리고 멋진 여자랑 사랑을 나누는 거야. 그다음엔... 

찰리: 네? 

프랭크: 호텔의 멋진 침대에 누워서 머리에 총을 쏘지.


https://youtu.be/La2UeJerGJ4?si=wUCicLM3tN5lIrUI


어느덧 추수감사절 연휴도 막바지에 이르러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프랭크는 찰리에게 나가서 아스피린과 특정 시가(cigar)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만, 뉴욕에 도착한 첫날부터 줄곧 장난처럼 건네왔던 프랭크의 말들이 못내 찜찜했던 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호텔 객실로 돌아와 자살 직전의 프랭크와 마주한다. 영화와 관련해 언급하고 싶은 것들이야 많지만, 특히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의 억울함과 분노와 자책이 미래의 불안과 함께 어우러져 튀어나온 프랭크의 절규 때문이었다. 극한의 고조된 감정으로 외치던 그 말이 과거 언젠가의 내 것으로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I'm in the dark here! You understand? I'm in the dark!"


찰리의 대꾸는 또 어떠한가. 착하디 착한 고등학생으로, 여태껏 살면서 욕 한 번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가 프랭크의 언어와 말투를 사용하면서 과감한 설득의 기술을 펼친다. 프랭크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순 없어도, 진심 어린 시선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기에 구사할 수 있었던 말들. 뉴욕에 머물렀던 요 며칠 동안, 세상에서 첫 번째로 가장 좋아한다는 대상과 탱고를 추었던,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한다는 페라리를 몰았던 프랭크를 상기시키며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대처하는 찰리.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선택지를 놓고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하는 건 실로 어려운 문제인데, 그런 선택의 상황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영상의 마지막에 프랭크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그래서 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게 아니었을까. 떠나고 싶지만 머무르고도 싶어.


https://youtu.be/W0FZci1NPCg?si=EG0_E_Od-ObRPPHK


오랜만에 이 영화가 생각나 어제 생전 처음으로 OTT(넷플릭스) 결제를 했다. 3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을 만큼 나 또한 그 어떤 지난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탓일까. 영화 속에서 찰리는 프랭크의 선택을 바꿔 놓았고, 프랭크는 찰리의 선택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영화의 말미 교내 강당에서 열린 상벌위원회. 교장을 골탕 먹인 학생들을 고하지 않으면 퇴학을 당하는 두려움 앞에서도 양심에 거스름 없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찰리. 그의 보호자를 자처하고는, 삶의 순간순간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쉽고 편한 길만을 선택했었던 자신의 과거를 만인 앞에 고백하면서 한 청년의 미래를 위해 격정적인 연설을 펼쳤던 프랭크. 그렇게 서로의 인생에 구원을 가져다준 두 사람. 부러웠다, 찰리에게 프랭크가, 프랭크에게 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몇 번씩이나 보았을 만큼 익히 잘 알려져 있을 수도, 또 누군가에겐 태어나기도 전에 개봉됐던 터라 제목마저 낯선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따라 왠지 나는 그들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각자 맞이한 선택의 길목에서 그들의 동행을 바라보며 느꼈던 내 부러움의 크기만큼 이 영화를 권해주고 싶다. 한낱 욕심에 지나지 않을 바람일지라도 그렇게 이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https://youtu.be/iCilb5T6ILg?si=Tule7G-RV5DDLCYi


지금은 장마 기간. 일기예보를 비껴가는 날씨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날들. 주말이 되면 가끔씩 예전에 출근했던 근무처 부근으로 차를 몰고 다녀온다. 거기에 가면 꼭 어느 곳도 아닌 사거리 스타벅스에 들러 빵 하나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는 잠시 시간을 죽인다. 평소엔 잘 들르지도 않는 프랜차이즈임에도 불구하고 통유리창 너머 시시하고 지루한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간이 그리워,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낯설지 않은 내 세상을 마주하고 온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반해 그리움만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 때로는 짜증나는 지겨움이 일기도 하지만 그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웃기게도 고마워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흐리고 바람이 불었던 오늘,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이라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노래를 들으며 문득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 곧 마지막이 되기도 할, 너의. 떠나고 싶지만 머물고도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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