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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즐링 Oct 17. 2024

8월 다회 청차,
우롱의 향에 빠져들다.


계절은 한여름이다. 올해는 더위가 일찍 시작해 8월 되니 기세가 아주 맹렬하다. 연일 이어지는 덥고 습한 날씨는 마치 습식 사우나에 들어앉은 듯 지치고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다. 올여름은 참으로 대단한 무더위다.


이렇게 더운 삼복엔 뭘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정지된 시간 같기도 하다. 자연이 한껏 계절의 최대치를 뽐내니 그 속에서 우리도 이 계절을 견디면서 지나가길 바라며, 8월 다회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즐거운 고민을 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한여름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흘리며 마시는 우롱차는 어떨까? 8월 찻자리는 우롱차로 정했다. 민남의 향기로운 꽃향, 무이암차의 깊은 암운, 봉황단총의 화려한 꽃 향까지. 여름의 절정에 다채로운 향기의 매력을 가진 우롱의 세계로 빠져든다. 밖은 다글다글 익어가고 있어도,  시원한 바람 아래  펼치는  찻자리가 호사스럽게 생각될 때도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또 여름을 지내야지.




백련 꽃 차로 다회를 시작하다. 


부용이라 불리는 연꽃은 한여름의 상징 같다. 초록 우산 같은 커다란 잎사귀 사이로 길게 꽃대가 올라온 연꽃이 가득한 연밭은 여름날의 장관이다. 연꽃은 청련, 황련, 홍련 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백련은 가장 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련으로 차를 만들어야 그 향과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아침에 연꽃이 피어날 때 차를 넣고 봉오리를 묶어주거나, 해가 지기 전 연꽃이 오므라들 때쯤 차를 넣어 두었다가 아침에 꺼낸다고 한다. 밤새 연향이 가득 베인 차를 꺼내 샘물을 길어 차를 우렸다고도 한다. 요즘엔 연꽃을 잘라 차를 넣고 밀봉하여 냉동으로 보관해서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기도 한다. 연꽃 차를 낼 때는 전날 저녁에 냉침해 둔 녹차를 커다란 유기 연지에 붓고 백련 꽃을 잘 펴준다. 차를 내기 전 백련 꽂이 피어난 유기를 찻상에 올리면 그 우아한 자태에 찻자리에 함께한 이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실제로는 처음 본다는 이야기, 예쁘다고 연신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한바탕 감상을 한 뒤에 표주박으로 잔에 차를 따른다. 연차를 마실 때는 소담하고도 은은하고도 향에 저절로 눈을 지그시 감고 그윽한 여운을 즐긴다. 시원하고도 화사한 백련 꽃 차로 다회를 시작한다.




두 번째 차는 안계철관음과 옥수수 팬케이크를 내었다.


철관음 중에서도 최고라 하는 안계철관음은 푸젠성 안시현(안계)에서 생산된다. 우롱차의 대표적 산지인 푸젠성을 예전에는 민(閩)이라 했다, 이 민은 민남, 민북으로 나뉘는데 안계철관음은 민남의 대표적인 우롱차다. 


안계철관음 찻잎은 단단하고도 둥글게 말린 모습이 꼭 잠자리 머리 모양과 비슷하다. 우릴 때는 첫물은 뜨거운 물로 찻잎을 적셔주는 윤차로 단단하게 말린 차가 풀어져 잘 우러나도록 한다. 우롱의 특징이 향인 것처럼 철관음은 맑고도 순수하면서 농후한 꽃 향이 난다. 마시면 입안에 감미롭고 싱그럽다. 차가 목을 넘기고도 입안에서 감도는 감미롭고 달큰한 여운이 오래된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맛과 향이다. 


철관음에는 달고 부드러운 8월 제철인 옥수수 팬케이크를 곁들였다. 연한 옥수수 알맹이에 전분이랑 치즈를 넣어 살짝 구웠다. 우롱의 싱그럽고도 진한 풀향에 옥수수의 달고 고소함이 잘 어울려 차가 막 들어가는 것 같다. 



이어지는 차와 푸드는 봉황단총과 참외 샐러드다. 


광동성 봉황산에서 생산되는 봉황단총은 차나무마다 고유한 품격과 특색이 있다. 차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독특한 향이 있어서 나무별로 채엽, 가공해 포장하고 가격을 책정하여 봉황단총이라 했다. 그 향이 무려 100여 가지나 되며 그중에서도 유명한 열 가지, 밀란향, 황지향, 계화향..등을  십 대 밀화라 부른다. 어떻게 찻잎의 향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구분하고 세분화했을까? 차향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봉황단총의 건조 찻잎은 갈색을 띠며 팽팽하고 곧은 모습이다. 맛은 진한데 신선하고 청량하다. 목을 넘길 때 매끄럽고 입안을 감도는 여운도 길다. 향기로운 꽃 향이 가득한 봉황단총에 시원한 단맛이 일품인 참외 샐러드를 곁들였다. 참외 속을 파내어 즙을 짠 후  올리브오일, 소금으로 소스를 만들어 납작납작하게 썬  참외에 뿌려주면 근사한 여름 샐러드가 된다.  뽀얀 과육에 드문드문 노란 껍질의 색감을 즐긴 후,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달달하고 시원한 여름의 맛을 느껴진다.  참외의 달큰한 부드러움이 봉황단총의 향에 스며들어 또 다른 향과 맛의 세계로 안내되는 듯하다.




이제 대홍포를 우릴 차례다.


대홍포는 푸젠성 무이산에서 생산되며 무이암차 중에서도 품질이 가장 우수한 차다. 무이산은 바위가 많고 그 틈에 자란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우리면 암차 특유의 향인 암운이 가득하다. 처음엔 훈연이 살짝 나면서 입안 가득 과일향이 피어오른다. 맛은 순수하고도 농후하며 입안을 감도는 회감이 있다. 암차만의 감미롭고 독특한 정취인 암운이 뚜렷하다.


대홍포엔 연잎 영양밥을 페어링 했다. 연이어 차를 마시니 슬슬 허기질  때쯤이다. 연잎 영양밥은 찹쌀에 밤, 팥, 콩을 담뿍 넣어 밥을 찐 뒤에 연잎에 밥을 놓고 고명으로 단호박, 곶감, 은행을 올려 연잎으로 잘 잠깐 뒤 다시 찜기에 쪄서 내면 된다. 밥 하나로 영양 가득하니 차를 많이 마실 때 딱이다. 



다회 마무리 차는 대만 우롱 종류에 서양배와 귤 등이 블렌딩 된 우롱 블렌드와 복숭아 타르트를 내었다.


우롱과 과일의 향이 어우러진 건엽은 꽃과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옆에 둔 듯, 향이 어찌나 달콤하고 상큼한지 다회 참석자들은 금세 과감한 차향에 빠져들어 찻자리는 이제 분위기가  밝고 경쾌해진 느낌이다. 그렇지 블렌드의 매력은 또 강렬함 아닌가~여태껏 마신 싱글 우롱차도 훌륭했지만 블렌드가 주는 가볍고 기분 좋은 향은 차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제철인 복숭아 타르트에 꽃 향과 과일향이 어우러진 우롱 블렌드로 한여름 다회를 슬슬 마무리한다. 이번 달도 차와 함께 즐거웠어요.



                                                               복숭아 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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