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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바람의 말을 받아쓰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마음의 계절을 새로 쓰는 일이다

by 에밀리

이른 아침에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손끝에 냉기를 남기고 지나간다. "벌써 입동이구나." 작게 중얼거렸을 뿐인데, 입에서 하얀 숨이 피어오른다. 어느새 겨울은 소리 없이 내 삶의 문턱을 넘어오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원에 국화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노랗고 하얀 얼굴들이 햇살을 품고 천천히 흔들렸다. 그새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따금 떨어진 꽃잎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 본다. 시들해도 향이 남았다. 잠시 잔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청춘이라는 신록의 계절을 지나, 이제는 향으로 살아가는 시절을 맞고 있구나.


버스 창밖으로, 은행잎이 마지막 빛을 뿜으며 흩날렸다. 그 샛노란 빛이 햇살에 부서지는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타지에서 겨울을 맞이하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낯선 도시의 찬 공기 속에서 혼자 서 있던 그날도, 오늘처럼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올려봤다. 바람은 그때도, 지금도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다.


집에 돌아와 워머에 불을 붙였다. 캔들의 불꽃이 움직일 때마다, 오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주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달큰한 냄새가 방 안을 채우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 깊은 곳에 불씨처럼 남아 있어서 아직도 내 안을 데운다.


입동은 겨울의 시작이면서 내면의 온도를 배우는 시간이다. 바람은 차지만, 따스함이 깃드는 순간에 머문다. 어쩌면, 계절이 바뀌는 것은 마음의 계절을 새로 쓰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그 문턱에서 햇살을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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