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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기다림에 대하여

말 못 하는 작은 생명이 멀리서도 날 부르고 걸음을 재촉한다

by 에밀리

안녕! 나는 하얀 털북숭이 말티즈, 오월이야! 시간은 펜스 밖에서 바쁘게 빨리 움직이지. 펜스 기둥 사이로 음식 냄새, 샴푸 냄새, 로션 냄새가 섞여서 들어와.


기척이 있을 때마다 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나도 함께 가도 될까?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펜스 문은 열리지 않았어. 발소리는 멀어져 가버렸지. "오월아, 기다려! 일찍 올게"


울타리 안쪽 공간은 작지만, 오월이만의 세상이다. 홀로 있어도 가족들의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아빠의 묵직한 구두 소리, 형들이 뛰어가는 경쾌한 리듬, 엄마의 운동화 끄는 소리.


모두가 떠나고 덩그러니 앉아서 창가를 본다. 뭉게구름이 파아란 하늘에 느리게 흘러가고, 바람에 커튼이 날린다. 그저 바라보며 웅크린 시간을 견딘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자세는 점점 낮아진다. 배를 깔고, 턱을 바닥에 대고, 눈을 반쯤 감는다.


여전히 문 쪽을 향하여 바라본다. 훌떡훌떡 뛰고, 컹컹 짖고, 누워서 배를 보이며 할 수 있는 표현을 다 해보았지만, 오늘도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럼에도 꼬리를 흔드는 마음, 기다림은 바람을 품고 있다.


해가 기울어 노을빛이 펜스 너머로 스며들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귀가 쫑긋 세워지고, 꼬리가 다시 움직인다. 발소리 하나에도 온몸이 반응한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 반가운 마음이 폭죽처럼 터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오래 머물지 못한다. 기다림은 반려견의 숙명이다. 강아지의 미련한 사랑이 애틋함을 넘어 눈물겹다. 말 못 하는 작은 생명이 멀리서도 날 부르고 걸음을 재촉한다.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오월이는 하루를 맞을 것이다. 순응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사랑, 가장 낮은 자세로 홀로 시간을 견딘다. 누가 이토록 한결같이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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