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음이 한 겹씩 벗겨지고 호흡과 발소리만 남았다
처음에는 오롯이 완주가 목표였다. 출발선에 설 때마다 다짐했다. “끝까지 가자!”
얼마 지나자마자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숨은 거칠어졌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공기는 채우기보다 온몸을 태우는 듯하다.
고통은 발걸음 따라 숨 쉴 때마다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km 코스 5~7km 지점이었을까. 무거웠던 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심장은 고르게 뛰었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이 흘렀다.
팔다리의 가벼운 리듬은 내 존재의 중심이 되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속도가 유지되고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세상의 소음이 한 겹씩 벗겨지고, 호흡과 발소리만 남았다.
5km 코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단지 달리는 행위 그 자체에 녹아 있었다. 땅이 아닌 구름 위를 걷는 듯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상념은 사라지고, 시간의 감각마저 흐려졌다. 바람이 몸을 스쳤고, 내 안의 경계가 무너졌다. 몸과 마음이 구분되지 않는, 일체의 감각. 그것은 일종의 무아(無我)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부른다. 러너스 하이는 신체의 경계를 넘는 순간이다. 근육의 피로와 정신의 저항을 넘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로 이어진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오는 해방감으로, 생생히 살아 있는 감각의 절정이다. 그것은 한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맞이할 수 있다.
달리기를 멈춘 후에도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가뿐했다. 세상의 색이 또렷해지고 미세한 감각이 새롭게 깨어나는 듯했다.
러너스 하이는 비단 운동에서만 느끼는 쾌감이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꾸준히 몰입할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최상의 여정이다.
본문 내용 중 마라톤 코스의 거리는 다음과 같아요. 42.195㎞ (풀 코스), 21.0975㎞ (하프 코스), 10㎞, 5㎞ 4가지 코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아직 풀코스를 뛰어본 적은 없어요. 처음에는 5km 시각장애인 동행 마라톤에 참여하면서 10km 러너들을 맞은편에서 생생하게 보게 되었어요. 그들의 갈망, 호흡, 무아의 얼굴을. 그러면서 10킬로를 뛰고....
하프코스 풀코스는 체력이 안 되서 인터뷰를 하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최근에 브런치 스토리에 '타조를 타고 달리는 구본준' 작가님 주신 글도 참 감사했습니다.
https://https://brunch.co.kr/@bluerain-9999/40
자원교육 강사로 학교에서 헬퍼스 하이를 설명하려면 러너스 하이를 먼저 거론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러닝, 오래달리기, 마라톤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일상에서 숨 차게 뛸 일은 차고도 넘쳤어요. 터울 지는 사 남매의 엄마라, 아이들 어릴 때는 에너자이저로 불릴 만큼 뛰고 뛰었습니다. 항시 최단거리를 머리에 그리며 다녔으니까요. 그러면서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깊게 쉬면서 달리기에도 점차 호흡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헬퍼스 하이 (Helper's High), 그 하이의 경지는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꾸준한 몰입의 순간입니다.
자나 깨나 시시때때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를 체오(體悟)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이면서 독자, 브런치 스토리에 풍덩 빠지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