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색다른 생일파티에 다녀왔다. 남편도 나도 잘 모르는 친구의 친구가 뜬금없이 생일이라고 초대를 했다. 어둑어둑한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친구가 물었다. ‘너의 생애 첫 기억은 뭐야?’ 뜬금없지만 그래서 더 반가운 질문이었다.
내 삶의 초반을 생각해 보면 미키마우스를 사랑한 다섯 살 때 내 짝꿍, 손지원이 빠질 수 없다. 지원이는 그의 어머니와 군인 아버지, 나의 가족, 유치원 선생님이 모두 인정한 나의 공식 남자친구였다. 우린 어디로 소풍을 가나 손을 잡고 다녔고 다섯 살 생일파티를 유치원에서 열어줄 때 지원이는 내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물론 선생님이 시키셨겠지만 덕분에 사진 속의 나는 활짝 웃고 있다. 어릴 적 나에게 지원이는 누구보다 귀여웠고 초등학교 때도 생각이 나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원이를 첫 시작으로 나의 남자친구는 자주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게 보았던 버라이어티 쇼 천생연분과 장미의 전쟁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쇼에서의 게임과 짝짓기가 너무 재미있었던 나머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 엇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을 모아 호수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쪽지를 교환하며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보기도 했다. 빼빼로데이와 밸런타인데이는 그 모든 노력이 고백으로 발현되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내게 연애는 재미있고 가벼운 게임 같았고,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소꿉장난 같은 연애를 열 번 정도 경험했다.
그래서일까. 가슴 아픈 연애 이야기를 담은 노래 가사는 경험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상대방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이상형으로 묘사해놓은 노래가 많았다. 물론 사랑을 하면 상대가 그렇게 느껴지지만,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믿고 싶은 것처럼, 당신이어야만 나여야만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그전 사랑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 때문에 8년 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 채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지내야 할 때, 나는 로이킴의 노래 ‘그때 헤어지면 돼'의 마음가짐을 지녔다.
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내가 너 없는 게 익숙해지면
그때가 오면 그때가 되면
그때 헤어지면 돼
떨어져 있을 동안 그 당시의 남자친구만큼, 나만큼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 서로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간이 오면 그때 헤어지더라도, 굳이 힘들게 미리 헤어지지는 말자고 얘기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대서양을 둔 장거리 연애 1년을 묵묵히 수행하고 지금은 3년 차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결혼한 지금도, 우리는 종종 육체적으로, 순간적으로 끌리는 상대가 나타나면 대놓고 찬양을 한다.
다만 살아갈수록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확률이 생각보다 낮다고 느낀다. 새로운 사람에게 끌릴 수는 있어도 사랑이라는 관계와 정신적 유대감은 기나긴 과정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끌림은 그 과정을 시작하게 하는 시발점일 뿐이다. 상대가 무엇에 크게 웃는지, 어느 곳을 언제 어떻게 마사지받기를 원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특정 눈빛을 보냈을 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대방이 힘든 날에는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이 모두가 일상을 오랫동안 함께할 때 알 수 있다. 그걸 다 함께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을 때 서로에게 특별해졌다고 느낀다. 결혼을 해도 누군가에게 끌릴 수는 있어도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바람을 피우지 않을 정직한 두 사람이라면 그 탐구 조차가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끌림이 사랑으로 발전할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해지기는 힘들어진다.
혹은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정감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