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뉘 Dec 18. 2023

프리랜서로 살기 쉽지 않을 때

안식기간에 스페인의 San Sebastián 에서 바라본 파도

어제는 아파트에서 열리는 당구대회에 참여했다. 고등학생 때 몇 번 말고는 당구를 쳐본 적도 없지만 주민들과 교류하고 싶어 용기를 냈다. 초심자의 행운은 얻지 못했다. 최종우승자와 첫 대결을 했고 두 공만 넣고 참패했다.


주민들과 몇 마디를 나누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인도에서 온 대학생 키샨은 경영학과 학생답게 무리 중 가장 사교적이었다. 내 직업을 물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사진, 영상 기자라고 답했다. 어디서 일하냐고 묻자 정직하게 프리랜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조금 뜨끔했다. 프리랜서인 건 맞지만 한 달 넘게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뉴욕에 살자며 패기 있게 괜찮은 정규직 직장을 떠나고 이사를 왔는데, 이곳에는 프리랜서가 너무 넘쳐난다. 뉴욕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면 진정한 실력자라고 들었는데 맞는 말이라는 걸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훨씬 행복하기에 과거의 패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주말에는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재즈바에 가서 공짜 즉흥연주를 듣고, 비가 오는 날에도 거리를 걸으며 건물, 공원, 사람들을 관찰하고 감탄할 수 있다. 작은 서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빨리 다 읽고 다음 책을 펴고 싶어 진다.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도시를 누빌 여유가 없는 주중에는 살아남기 위한 이 여정이 참 길다고 느낀다. 남편이 인스타그램에서 마케팅에 도전을 하고 있는데, 이를 지켜보다 보면 사진가의 수요가 적은 이유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남편이 원하는 사진 키워드를 적으면 몇 초만에 AI가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출처를 적기만 하면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길을 계속 추구하는 게 맞을까 의심도 해보고, AI가 아직 하지 못 하지만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것들을 모색해 본다.


하루종일 컴퓨터를 바라보며 대체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이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게 된다. 요즘은 요리에서 그 답을 찾았다. 요리는 비디오게임처럼 잠시 현실을 잊고 내 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게 해 준다. 비디오게임보다 좋은 건 모니터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집중만 하면 사랑하는 남편과 맛의 행복을 나눌 수 있다.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믿기에 더 끌린다. 억지로라도 우리는 매일 먹어야 하니까. 1시간 남짓 요리해 맛있는 걸 먹고 나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에너지도 솟아난다.


이 모습은 일을 할 때와 차이가 크다. 이전에는 너무 바빠 우리는 주말마다 meal prep을 했다.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을 주말에 다 요리해 놓고 꺼내먹기만 했다. 먹으면 사라질 음식인데 시간과 공을 들여서 요리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주중에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고 미리 식단을 짰기에 주중에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주말에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외식을 했다. 하지만 목요일 즈음이 되면 어떤 요리든 흐느적거렸다. 질리지만 말 그대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먹었다.


남편과 내가 꿈꾸는 대로 요리사를 고용할 만큼 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평생 요리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때문에 싫어하던 요리를 좋아하게 된 건 반가운 변화다.

작가의 이전글 닭갈비로 느껴보는 우리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