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뉘 Oct 12. 2023

사랑을 느끼려면

4년 반 장거리 연애 후 결혼한 국제커플의 다짐


©Yehyun Kim (@yehyunkim_visual)

두 달 반 한국에서 지낼 때 지겹게 들은 질문이 있다.

"남편은 왜 같이 안 왔어?"

남편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그래도 부부인데 같이 다녀야지~"  


이 말은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결혼을 결심할 때 항상 붙어 다니자고 계획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관계가 더 건강하다고 믿었다. 남편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나는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한국에서 살았다. 가족도, 가까운 친구들도 한국에 살고 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오래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편하고 통한다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남편이 함께하면, 어느새 나는 사회자와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과의 소통에는 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3년간 매일을 함께 하던 사람과 두 달 이상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긴 했다. 남편에게 “그냥 가지 말까?” 묻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게 힘들어지면 일찍 돌아올 수도 있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우리 둘 다 믿고 있었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막상 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내다가 예정기간을 꽉 채우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4년 반 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던 커플이다. 그동안 누구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고 헤어질 위기도 없었다. 떨어져 있어도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거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장거리 연애에는 그 기간의 길이보다 그 기간 동안 각자가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연애시절 대부분 떨어져 지냈으면서도 순탄하게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첫 직장에서 적응하느라 바빴고, 나는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잠깐의 틈이 나면 무언가를 함께 할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남편과는 일주일에 한 번 영상통화를 하며 일상을 업데이트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불가피하게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면, 관심을 연애에서 각자의 세계로 돌리기를 추천하는 이유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 시간이 많아진 이번 안식기간에는 달랐다. 매주 영상 통화를 할 때 왜인지 모르게 나는 시큰둥했고 해야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 살 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내게 크고 소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운전을 하지 않고도 몇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널려있는 취향저격 맛집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대학교 때 친구들, 두 시간만 기차를 타면 만날 수 있는 이모와 계속 안아주고 싶은 귀여운 조카,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주는 가족 같은 편안함, 흘려들어도 뉘앙스까지 다 들어오는 한국어, 신간부터 베스트셀러까지 읽고 싶은 한국어 책이 가득한 서점, 비슷한 감성의 노래를 좋아하고 소개해주는 음악학원 선생님과 동료들, 집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이 모든 것을 곧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직시하게 됐다. 미국에서 남편과 살기로 결정하면서 포기한 것들이 더 부각되었다.


알랭 드 보통이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듯, 만약 남편이 한국에 함께 있었다면 남편과 함께 할 때 느끼는 사랑과 행복이 한국 생활을 향한 욕망을 대체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국제결혼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사랑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남편을 향한 내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얼마나 큰지, 어떻게 지속해 나가는 게 좋을지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남편은 처음의 끌림과 헌신(commitment)이 합쳐져 사랑을 만든다고 답했다.


여행이 끝나가는 이 시점, 그 헌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랑을 느끼려면 억지로라도 상대와 대면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여행을 하면서 남편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 순간은 무언가를 함께할 때 불쑥 찾아왔다. 가령, 하루의 끝에 내가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서 잠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셀피로 담아두었다. 침대에 누워 잠자기 전에 왜 찍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면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하곤 했는데 바로 그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순수한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런 순간이 쌓이면 사랑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보내는 시간 자체가 적으면 그 순간을 맞이할 여지도, 사랑을 느낄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번 여름을 계기로 남편과 다짐을 했다. 한국에 있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가능하면 너무 오래 떨어져 있지는 말자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남을 정의하지 않을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