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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뉘 Oct 08. 2023

남을 정의하지 않을 용기

파리 여행 중 돌아본 타인을 향한 태도

©Yehyun Kim

2주 전 파리를 여행하던 중, 대학원에 다닐 때 친해진 커플을 만났다. 줄리아는 프랑스인이고, 그녀의 미국인 남자친구 제이는 줄리아와 살기 위해 프랑스로 이사를 왔다. 그들과 센 강을 따라 걷다가 제이에게 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것 같아? 미국인들이랑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느낀 게 있다면 뭐야?"

성인이 되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면 그 나라 사람들을 더 관찰하고 분석하게 된다고 생각해 그의 시각이 궁금했다.


제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프랑스어로 beauf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단어가 나오자마자 줄리아가 곤혹해하며 그 설명이 부적절하다며 제이의 말을 막았다. 더 궁금증이 생겨 왜 그러냐고 물었다. Beauf는 사전적으로는 배우자의 남자형제를 의미하지만, 은어로는 교양 없고 취향이 저속하다고 누군가를 비하할 때 쓰는 단어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런 저속한 부류인지 아닌지는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인 대다수에게는 제이를 포함해 미국인들이 beauf로 보일 수 있고, 우리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일 수 있으니, 굳이 누군가를 그런 상대적 단어로 정의하지 말자고 줄리아가 말했다. 제이는 그런 비하의 의미가 있는지 몰랐고 자신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줄리아의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이 단어를 쓰는 것 자체에 치를 떠는 반면, 나는 미국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자신과 구분 지어 비판하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beauf와 비슷한 의미의 영어 단어 redneck을 여러 번 들었다. 목덜미가 뻘겋게 탈 만큼 바깥에서 육체적 노동을 하는, 교육받지 않은 백인 노동계층을 비하하는 단어이다.


굳이 이 단어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들을 그룹으로 묶어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한다. 나도 어느 순간 그렇게 말하고 있기도 했고, 어느 정도는 이 태도가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였다.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주변사람들이 이에 공감해 줄 때 자신과 자신의 그룹은 남들과 다르다는, 고로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하기에, 남을 타자화하고 비난하는 건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기 쉬운 방법이다.


줄리아의 주장은 분명 바람직하지만, 그럼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는 게 좋을까?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뜻밖에도 줄리아는 우리가 하는 기자 일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줄리아는 프랑스에서, 나는 미국에서 기자로 일하며 각 사람들의 상황, 역사를 듣는다. 흔히 redneck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일단은 열린 마음으로 질문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궁금증도 생기지 않고 그 사람도 그걸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나도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가령, 대학교 초반 때만 해도 마약 중독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취재 중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의 집에 가보고 가족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중독에 빠질 요소가 널렸음을 발견하는 식이다.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본 게 아닌 이상, 구분 지어 부르기 전에 우선 그들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기로 했다. 그런다고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 부류로 정의하며 남을 비난하는 순간 내 세계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추가된다. 내가 이해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만약 타인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다면, 이는 나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려 한다. 타인을 나쁘게 정의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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