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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닥터 Sep 06. 2023

슬기로운 감빵의사생활

Episode 2. 온몸을 상처 내고 있어요

"선생님, 재소자 하나가 온몸에 상처를 내고 있어요."
온몸에 상처를 낸다. 무슨 일일까. 정신과 환자 같은데 어떤 진단명을 생각해야 할까. 상념에 잠겨있던 중 한 재소자가 도착했다.


"너무 간지러워요. 안에서 끌어 오르는 것처럼 긁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요."

알레르기도 없고 유발할 만한 원인도 없다. 도대체 뭘까? 재소자가 이어간다.


"화상 진료 김 원장이 트라조돈 먹던걸 설명도 없이 빼버려서 이렇게 됐어요. 금단 현상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이 끊어버리니 제 몸이 이 상태죠."

그는 트라조돈 12.5mg을 복용 중이었다. 25mg짜리 약의 반 알 용량이다. 트라조돈은 우울증 치료제나 수면제로 사용되는 약물이다. 수면장애에 사용할 때는 우울증에 쓸 때보다 용량을 낮추어 25-100mg 정도 복용한다. 다른 재소자들도 비교적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약물이다.


"트라조돈은 굉장히 흔한 약물이에요. 반 알을 먹다가 끊은 걸로 그런 금단 증상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여기 안에서도 4알을 먹는 재소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게다가 화상 원장님은 한 번에 끊지도 않고 점차 용량을 줄여오셨네요."

테이퍼링(tapering). 장기 복용하던 약물을 끊을 때는 한 번에 중단하지 않는다. 일시에 중단했을 시 금단으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화상진료 원장님도 당연히 두 알에서 한 알, 한 알에서 반 알로 테이퍼링 하여 약물을 끊었다. 다시 말하면 이 증상은 금단 현상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제 몸을 이렇게 만든 화상 진료 원장한테 복수할 거예요. 제 부인한테도 말해서 김 원장 의원에서 한판하고 왔다니까."

교도소의 진료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주저하는 일이다. 특히 보복의 우려가 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에겐 더욱 그렇다. 재소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들의 마음의 병이 더 이상 범죄를 이어지지 않도록 어떠한 사명감을 갖고 진료를 해주는 선인들은 그럼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에 따라 진료를 봤다는 사실도, 약물 중단의 부작용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용량을 조절해 왔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기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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