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선생님 살려주세요
"선생님 살려주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살려달라니.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너무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고 세상이 빙빙 돈다고 한다. 일어나 보라고 하니 제대로 일어서기도 전에 한쪽으로 고꾸라진다.
'어지러움'
한국어로는 한 단어지만 의학용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 가능하다. dizziness와 vertigo.
Vertigo는 '세상이 빙빙 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석증 같은 비응급의 이비인후과 질환부터 뇌졸중 같은 초응급의 신경과 질환까지 vertigo를 유발할 수 있다. 주로 이비인후과나 신경과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증상이다.
Dizziness는 '눈앞이 하얘진다.'라고 표현할 수 있고, 흔히 현기증이라 말할 수 있다. 빈혈이나 탈수, 저혈당이나 저혈압, 그리고 심장 문제 등 전신질환이 있을 때 보통 발생하는 증상이다.
'복통과 설사. vertigo와 보행장애.'
생각나는 질환이 없다. 증상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진찰을 해보니 탈수도 없고, 신경계의 이상 역시 없다. 내가 부족한 것인가 그가 증상을 속이는 것인가 명확하지 못해 여러 생각이 들지만, 갑자기 시작된 극심한 복통은 원인을 무조건 찾아내야 한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CT 검사, 초음파 검사, 혹은 내시경 검사를 통해 수술이 필요한 질환인지 가려내야만 한다. 생리식염수만 하나 달아주고 어쩔 수 없이 외부 진료를 보낸다.
"증상이 꾸며낸 것처럼 맞지 않는데,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일단 응급실을 갈 수밖에 없어요."
수용자가 나간 뒤 교도관 님과 한탄을 한다. 몇 시간 뒤 그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 수용자 나가서 검사했고,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거기 병원 교수님도 증상이 이상하다고 하네요. 내시경을 하자고 했더니 안 한다 그랬대요. 내시경이 비싸거든요."
살려달라고 할 만큼 배가 아픈데 비싸다고 검사도 안 하다니. 그러고 돌아와선 진통제도 안 들어간 수액이나 더 놔달라고 하다니. 그냥 소금물인데. 응급실에 다녀온 뒤 그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런 치료도, 검사도 없이 그는 나았다. 그 사건이 있은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시점의 그는 평온하다.
알면서도 속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 증상을 말해도, 증상과 진찰이 맞지 않아도.
진짜 아플 수도 있으니까. 내가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