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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린 세계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감상평

책 읽는 이야기

by 오리냥

나는 느린 세계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 류지현

류지현 작가는 특수교육 현장의 교사이다. 특수교사. 교사라는 명사 앞에 특수라는 수식이 붙은 직업을 가진 작가의 마음과 시선이 내겐 무엇보다 궁금한 부분이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로서 아이가 특수교육기관을 거쳐 어린이집을 보내고 통합학급이 있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보내기까지 만나고 헤어졌던 많은 선생님을 다시 만나는 듯 설레고 기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의 노력과 애씀이 어떤 방식으로 책 안에 녹아들었을까 내심 무거운 심정이기도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내용으로 인해 지난 시절이 떠올라 마음 아프면 어쩌나 자기 연민 같은 고민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글의 내용은 담백했고 유익했으며 허심탄회한 진심이 배어있었다. 지난 시절 내 아이가 만났던 선생님들께 느꼈던 믿음과 사랑을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책은 다섯 챕터로 나뉘어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치 운명처럼 특수교육 현장에 들어서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장애의 특수성을 변별해 이해력을 도왔다. 또한 교실에서 일어나는 어렵고도 힘겨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특수교사로서의 세심한 지도 방식을 적은 부분에선 간절한 마음도 읽혔다.


네 번째 챕터인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 특수교육의 미래에선 우리 사회가 대하는 장애의 인식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정과 특수교육 현장에서의 교육과 지도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미래의 삶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나아갈 방향 또한 제안하며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 챕터에선 특수교사의 중요성을 다뤘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역량을 다해 힘을 내는 교사들이 있어 장애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향해 느리지만 자신의 속도대로 나아간다.


내 아이 또한 수없이 많은 선생님이 계셨다. 장애를 일찍 발견한 만 1세부터 특수교육을 시작했다. 복지관의 프로그램과 사설 기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비롯해 특수교육기관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헌신과 전문적인 교육이 밑바탕 되어 내 아이 또한 느린 세계에서 본인의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가 챕터 3에서 다룬 헬렌 켈러의 설리번 선생님처럼 세상의 많고 많은 설리번 선생님 중 내 아이가 만났던 설리번 선생님도 많다. 좌절과 상심에 빠져 헤매던 때 아낌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던 선생님들. 시시 때때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열정과 따뜻함은 지금껏 우리 가족의 삶 안에 배어있다. 아이가 여섯 살 때 다녔던 광성하늘빛학교의 최은주 선생님, 만 3세부터 다녔던 기쁜샘 특수교육원의 수녀 원장님과 정성희 선생님, 성모장애인복지관의 김현아 선생님, 야탑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윤진미 선생님, 통합학급 김보현 선생님, 동중학교 통합학급 심선지 선생님, 고등학교 통합학급 이미정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2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우리 아이들 곁에 머물고 계신 성남동 성당 장애아 주일학교 선생님들. 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내 기억력이 유지되는 한 잊을 수 없는 설리번 선생님들.


누군가의 막막한 세상에 자신의 빛으로 이끌고 계실 특수교육 교사이자 작가인 류지현 선생님의 경건한 교육 현장이 더욱 빛을 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없는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적어 내려갔다. 교사는 학기가 시작하면 먼저 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선 고백, 후 사랑’이지요. 그러다 진짜 사랑을 하게 되는 1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 패턴은 매년 똑같습니다. 매일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그 사랑은 시간이 흘러 배로 되돌아옵니다. 그 시작이 힘들고 버거운 날도 있지만, 저는 오늘도 사랑을 먼저 건네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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