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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Feb 16. 2024

제비꽃 화분 사건

살아가는 이야기

  삼 년 전 코로나 시국에 주말을 맞아 시골에 내려갔다. 올해로 홀로 지내시는 시어머니의 안위를 살펴보고 밭일도 거들려는 이유였다. 코로나로 인해 유일한 나들이인 노인정에도 못 가시고 집에서 24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하니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시골에 도착해 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하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에 일단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는 코로나보다도 밭일을 더 많이 걱정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농사가 힘에 부친다며 자식들이 건사하기를 바랐으나 자식들은 그 좋은 자리에 호두나무 30그루를 심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 밭에 나가 볼 때마다 못마땅해하셨다. 이번에도 우리를 보자마자 나무 옆에 뭐라도 심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불만을 내비치셨다.

  남편이 밭을 돌아보며 흙을 돋우고 들깨 모종을 심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사이 난 밭 주변에 소복이 올라온 쑥을 캤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캐는 것도 잠깐, 허리와 무릎이 서서히 아프고 온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끼 국거리만큼은 캤으니 그것으로 추억 놀이는 충분하다고 위안하며 밭 가운데로 갔다.

  곡괭이로 고랑을 만드는 남편 옆에서 어머니는 호미로 풀을 뽑아냈다. 긴 밭고랑 주변으로 보라색 제비꽃이 곳곳에 피어나 마치 제비꽃밭처럼 보였다. 그냥 두면 잡초로 취급되어 곡괭이에 난도질을 당하거나 호미에 찍힐 처지였다. 난 얼른 호미를 들어 제비꽃을 캤다. 아뿔싸, 제비꽃의 뿌리는 생각보다 땅속 깊이 묻혀 있었다. 고구마를 캐듯 제비꽃 부근으로 호미를 깊숙이 넣어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뽑아냈다. 어머님은 열심히 호미질하는 내 모습을 보며 쑥을 캐는 거라 여기셨던 모양이다. 나중에야 딴짓한다는 걸 알아챈 시어머니는 그거 캐서 뭐 할 거냐며 물으신다. 화분에 옮겨 심을 거라니까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영 마뜩잖은 표정이시다.

  몇 뿌리 더 캐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저녁밥 준비한다는 핑계로 얼른 집으로 들어와 빈 화분에 흙을 담고 정성껏 옮겨 심었다. 그 외에도 별꽃 몇 뿌리와 밭둑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민들레 한 포기를 제비꽃 옆에 나란히 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시들하던 것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힘이 들어갔는지 제법 꼿꼿해졌다.

  다음날 집으로 출발하기 전 화분부터 챙겨 차에 실었다. 혹여나 어머님 눈에 띄면 면 풀은 가져가서 뭐 하려느냐고 못마땅해하실 게 뻔하였다. 그렇게 제비꽃 화분은 무사히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집에 돌아와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전화를 드렸다. 대뜸 어머니는 가방이랑 캐놓은 쑥은 왜 안 가져갔다며 걱정하신다. 아차, 제비꽃 화분 챙길 생각에 가방 챙길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이다. 쑥은 어머니 드시라고 캔 것이고 가방도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괜찮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제비꽃 화분은 일조량이 부족한 탓인지 며칠 만에 시들었고, 그나마 민들레꽃은 꽃송이를 올리더니 씨앗을 품었다. 차라리 그 밭고랑에 살게 두었더라면 풀꽃의 생명력으로 몇 계절은 곱게 피어났을 텐데…… 내 욕심만 차렸던 나로선 여러모로 민망하기만 했던 제비꽃 화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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