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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Apr 04. 2024

사월의 노래

살아가는 이야기

   사월이다. 따스한 봄기운에 겨우내 메말랐던 꽃나무마다 살포시 꽃 순이 돋고, 봄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곳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꽃망울을 올린다. 망덕산 기슭과 맞닿아 있는 우리 아파트는 다른 곳에 비해 지대가 조금 높은 편이라 봄소식이 늦게 도착한다. 각종 매스컴에서 앞 다투어 전국의 꽃 소식을 전하고, 양지쪽에 자리 잡은 꽃나무에 개나리, 벚꽃, 목련꽃들이 때맞춰 피어나면 그제야 슬금슬금 꽃망울이 올라온다. 늦은 저녁 퇴근길 아파트 화단에 뽀얗게 올라온 목련 꽃망울이 반갑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곤 한다.


  학창 시절 학교 화단에는 커다란 목련나무가 몇 그루 서있었다. 이른 봄 아침 일찍 교정에 들어서면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목련꽃은 신비로울 정도로 뽀얀 색이어서 목련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등교하던 친구들이 아는 체하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며칠씩은 그렇게 아침마다 지나는 길에 시선이 머물던 목련나무. 

  남녀공학이었던 우리 학교는 시골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가정 선생님이 음악 과목까지 함께 가르쳤다. 그러니 수업다운 수업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수업 때마다 짓궂은 남학생들의 장난으로 인해 여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며 자습을 시키기 일쑤였기에, 음악 수업은 늘 맹탕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시험 기간 때만큼은 제법 진지해져서 며칠은 소음 없는 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지만 악기를 다뤄볼 기회가 없었던 우리는 음악 책에 수록된 노래를 불러 실기 평가를 치렀다. 지정된 노래는 '사월의 노래'였다. 선생님께서 이름 대신 출석부 번호순으로 한 명씩 교단 앞에 세우고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 꼬꼬마였던 나는 키 서열로 두 번째였다. 제일 먼저 호명된 친구가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유일하게 나보다 키가 작은 친구였는데 떨지도 않고 제법 잘 불러 박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다음은 내 차례다. 호명이 되어 죄인처럼 불려나간 나는 가슴이 두 방망이질로 터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시작 신호음에 맞추어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파르르 떨리는 목청을 가다듬어 한 구절을 불렀다. 두 번째 구절에서 고음으로 시작되는 "구름 꽃" 첫 마디에 목청은 그만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당황한 나는 노래를 멈췄다. 선생님은 가뜩이나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셨고 백여 개의 눈도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선생님은 멋쩍은 웃음을 띠시며 다시 불러보라고 하셨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첫 구절을 불렀다. 무난히 넘겼다. 다음 구절 "구름 꽃" 다시 삑 소리가 났다. 나에게 쏠려있던 백여 개의 눈들은 일시에 크하학 소리를 내며 책상을 두드렸다. 민망해진 나는 다시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헛기침을 하고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지휘봉으로 교탁을 탁탁 내리치셨다. 그리고는 잠시 고요해진 틈을 타 다시 한 번 더를 요구하셨다. 

  왜 이러실까, 숨도 쉬어지지 않는 나를 향해 진정으로 한 번 더를 요구하시는 깊은 뜻은 따로 있겠으나, 난 그저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하지만 시험인데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첫 구절을 불렀다. 역시나 무난하게 넘어간다. 다시 문제의 구름 꽃과 맞닥뜨렸다.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로 끌어올린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소란이 멈췄던 교실은 일순간 책상을 두드리는 아이들과 발을 구르는 아이들, 정신없이 웃는 아이들 때문에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지휘봉을 아무리 교탁에 내리친다 한들 지휘봉이 꺾였으면 꺾였지 아이들이 수그러들 상황은 아니었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나는 목석이 되어 발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선생님은 웃음을 참기 위해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리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목소리에 힘주어 말씀하셨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생각했다. 이제 학교는 그만 다녀야 하나. 

  그날 이후로 싫어하는 과목이 하나 더 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목련꽃은 물론이고 목련 비슷하게 생긴 꽃들조차 쳐다보기도 싫었다. 봄이 되면 교정엔 어김없이 목련 꽃이 피어났건만 난 애써 외면했다. 그때 유난히도 박장대소를 하며 뒤로 넘어가던 까까머리. 틈만 나면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말 걸던 남자애. 일요일이면 버스 타고 40분 거리를 달려와 우리 집 앞을 지나며 흘낏 쳐다보고 가버리던 아이. 끝끝내 그 애와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유일한 복수였던 학창시절의 목련 꽃그늘 아래서.


  다시 목련이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라디오에서 양희은의 ‘하얀 목련’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문득 그 시절의 그 까까머리가 떠오른다. 왜 하필 그 아이가 생각났을까. 혼자 피식 웃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날이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목련 꽃잎처럼 맑고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은 퇴색되지 않는 유일한 꽃잎으로 남아 지나온 세월을 반짝이게 해주고, 꺼지지 않는 향기로운 꽃등이 되어 새로운 나날에 천연의 엔돌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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