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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냥 Mar 29. 2024

나만의 봄맞이

살아가는 이야기

  모처럼 여유로운 휴일, 3월의 끝자락에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내리는 소리도 가볍다. 연둣빛 어린 잎새와 연분홍빛 여린 꽃잎 사이로 내리려니, 스스로 무게와 속도를 가볍게 만드나 보다. 

  우산 하나 들고 집 근처 공원 산책을 나섰다. 공원으로 향하는 숲길은 지난봄에 보았던 풍경처럼 곳곳마다 봄꽃들이 가득하다. 군데군데 진달래꽃이 산발적으로 피어 있고 참나무 어린 새순은 빼꼼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작년 봄 온 숲을 꽃향기로 가득 채웠던 아까시나무와 

때죽나무도 때맞춰 내리는 봄비에 촉촉 젖어 드는 중이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천천히 숲길을 걸어 올라 공원에 다다랐다.

  작년 5월 말 호되게 아팠다. 매년 3월이 지나고 4월 중순쯤 접어들면 몸살을 앓곤 했는데 작년엔 유난히 힘들었다. 직업병인가 싶고,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내 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할 때가 되었나 싶어, 사뭇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봄이 되면 한 번씩 몸살을 앓게 된 건 보육교사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3월에 신입 원아가 들어오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보듬다 보면 한 달 내내 긴장하게 된다. 그렇게 3월과 4월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는데 나 또한 긴장감이 풀려 한바탕 몸살을 앓곤 했다. 

  처음 몇 해는 계절병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봄 앓이를 하느라 그럴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몸살 약을 먹으며 버텨냈다. 하지만 그것도 만성이 된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몸이 버텨내기 힘들었던 것인지 작년 5월은 유난히 심했다. 아마도 비슷한 증상을 20년 가까이 되풀이하게 되니 봄기운이 느껴지면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누울 자리부터 찾게 되었던가 보다.

  올해도 마찬가지인지라 최대한 몸을 사렸다. 출근하는 일 외에는 바깥에 나가는 일을 거의 멈추고 휴식 시간을 꼬박꼬박 챙기며 봄이 시작되는 3월을 애써 외면한 채 흘려보냈다.

  못 본 척, 모르는 척 3월을 지나는 사이에도 봄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벚꽃은 활짝 꽃잎을 열어놓았고 양지쪽 꽃잎들은 봄비에 시든 꽃잎을 털어내는 중이다. 목련과 산수유도 이미 봄을 맘껏 누렸는지 꽃잎이 봄볕에 바랜 빛깔이다. 산책로 가장자리엔 민들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드물게 보이는 제비꽃도 꽃망울을 터트려 봄비를 한껏 끌어안고 있다. 

  우산을 쓰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공원을 돌았다. 툭툭 투두둑…… 비는 나뭇가지를 지나 우산 위로 떨어져 내리며 마찰음을 낸다. 꽃잎 위로 내릴 때나 나뭇가지에 내릴 땐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다. 꽃나무 밑을 지날 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유난히 크다. 

  우산살을 따라 흘러내린 빗물이 발끝에 떨어진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내딛는 발걸음이 빗방울 전주곡처럼 경쾌하다. 봄비조차 이토록 아끼는 계절을 어찌 나만 애써 모르는 척 지냈나 싶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지레 내 몸 살피느라 정작 무엇으로 힘을 얻는지 잊고 지냈는가 보다. 

  마음의 감옥에 갇혀 백 년을 사느니 밝은 햇살 아래 하루의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동경한 때도 있다. 그것 또한 젊은 날의 치기였나 싶어 조금 겸연쩍기도 하다. 그래도 완벽한 빈말은 아니었는지 봄날의 여유가 지친 나를 살려내고 있다.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계절 앞에서 이토

록 몸과 마음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은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리라. 

  봄의 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와 스러지려는 나를 곧추세우고자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봄비를 맞으며 나 또한 나만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대지가 봄비를 받아 안듯 메마른 가슴을 활짝 연다. 봄비에 붉게 피어난 꽃잎처럼 내 마음도 붉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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