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전 굽던 날 / 유복녀
그런 날은 꼭
비가 몹시 내렸어
종일 논에 나가 일하던 아버지도
집에서 잠으로 하루를 채웠지
엄마는 그런 날도 바빴어
얼마나 바쁘던지
나까지도 덩달아 바빴지
닦아라 깎아라 갈아라
함지박 가득 쌓여있던 감자
비릿한 반죽이 될 때까지
잠시도 쉴 틈 없었어
아무리 봐도 엄마는
입으로만 바쁜 것 같았지
어쩐지 억울해
내 얼굴은 낮도깨비처럼
붉으락 푸르락
투덜투덜
입으로만 바쁜 엄마가
조용히 해라 한 마디에
찍소리도 못하고 끙끙 앓았지
엄마의 시간이 왔어
몇 갑절 바빠진 엄마 곁에서
가스레인지도
프라이팬도
지지직 소리조차 바빴지
어느새 보름달처럼 노랗게 익어가는 소리
그뿐만이 아니야
눈으로만 바쁘던 동생들은
입까지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어
아버지 일어나요
빨리빨리요
내 젓가락 어딨어
여긴 내 자리야
비키란 말이야
지글지글
왁자지껄
화음 넣듯 후두두둑
쏟아지는 빗소리
고소하고 쫀득한 감자전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앗 뜨거
그런 날은
엄마처럼 바빴던 나도 왠지
어깨춤 으쓱으쓱 기분 좋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