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최대 10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연휴라며 2025년까지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떠 돌만큼 길었던 연휴가 끝났다. 쉬는 날은 어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연휴 시작 전부터 SNS에는 ‘긴 연휴 동안 읽을 책’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여러 권의 책들을 소개해 주는 글이 많았다.
일주일에 몇 권씩 읽는 일은 나에겐 버거운 일이라, 이번 연휴에 읽을 책으로 나는 조정래 작가 <아리랑> 1권을 선택했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태백산맥-한강을 읽으면 대부분의 한국 소설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글을 본 뒤로 한번 시작해 봐 야지, 마음먹었던 일이었다.
긴 연휴를 핑계 삼아 연휴 시작 전 <아리랑> 1권을 빌렸다. 속마음을 말하자면 1권을 읽다가 포기할지도 몰라서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었다. 등단 50주년 기념 개정판 양장본으로 출판된 책은 400쪽이 넘는 분량을 자랑했고 총 12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12권은 고사하고 1권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지레 겁부터 났다.
그렇게 나의 첫 조정래 읽기가 시작됐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40쪽 정도를 읽었을 때, 이렇게 재밌다고? 마치 영상을 보는 듯한 생동감과 흡입력, 사투리로 오가는 인물들의 대화는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책을 읽고 있는데 드라마 속 대사를 듣는 것 같았다. 드넓은 호남평야 풍경 묘사는 또 어떻고.
아, 이 책은 무조건 사서 읽어야겠다,
이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을 책이 아니다.
시대적 배경과 인물 설정, 인물들의 사연과 관계를 잘 정리해 가면서 밑줄을 긋고 긴 호흡을 따라가며 읽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그 길로 서점에서 <아리랑> 1권을 구매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지만 다 읽지 못한 채
반납하는 일을 책을 산책시켰다고 하는데
<아리랑> 1권은 책 산책 후, 내가 산 책이 됐다.
연휴 동안 책만 읽은 건 아닌지라 아직 1권을 읽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계속 읽게 되는 작품이다. 그만큼 몰입감이 엄청나다. 왜 이제 읽었을까, 후회될 정도로.
12권을 다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먹구름의 험상궂은 기세만큼 바람결도 거칠고 드셌다. 바람은 넓은 들녘을 거칠 것 없이 휩쓸어대고 있었다. 바람이 휩쓸 때마다 벼들은 초록빛 몸을 옆으로 누이며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벼들은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았다.
허리가 반으로 휘어지는 고초를 당하면서도 서로서로 의지해 가며 용케도 다시 허리를 세우고는 했다.
그 슬기로움은 험한 기세로 몰려오고 있는 먹구름도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p.12
나아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니만큼, 조금은 반듯한 자세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험한 먹구름이 바다 건너 몰려와 고초를 당하면서도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맞선,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늘 타인의 책장 속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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