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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 나무 Feb 20. 2024

휘낭시에 굽는 날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면 요리를 한다. 그것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메뉴를 선택한다. 오래 걸릴수록 좋다. 그래서 라구소스, 갈비찜, 휘낭시에는 내가 애정하는 메뉴다. 재료 준비부터  조리는 시간 많이 걸리 불을 조절하고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니 딴생각을 할 수 없. 뒤엉킨 생각들이 불안 초조으로 나를 압박할 때면 마음마저 납작해진다. 마음이 납작해지니 나도 덩달아 작아지는 기분이다. 자신감도 의욕도 함께 작아진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뒤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나머진 버려야 한다. 그렇게 선택된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제 자리를 찾아가면 새로운 생각과 마음이 생겨난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 내가 정한 기준으로 균형 이루어졌을 때, 일상이 제대로 다시 흘러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생각마저도 버거울 때가 있다. 이땐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움직여 지금에 집중하는 것! 내겐 요리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 내가 선택된 메뉴는 휘낭시에다. (밀가루보다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이 좋아서 쌀박력분을 쓴다.) 일단 굽는 내내 달콤하고  밀키 한 버터향은 향수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치명적인 향으로 행복감을 준다. 또한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한 나의 최애 구움 과자다. 재료는 간단하나 굽는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지 비싸게 판매된다. 그래서 나도 한번 구울 때마다 대량생산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나를 위해 구움 과자를 굽지만 또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휘낭시에('Financier')라는 이름은 프랑스어의 '금융가'라는 형용사로부터 만들어졌는데, 새해가 되면 덕담을 나누며 재물운을 바라는 뜻에서 금괴모양의 구움 과자를 선물하면서부터 휘낭시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엔 카페에 가면 디저트 메뉴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금괴모양 틀에 굽지만, 레몬모양을 틀에 넣으면 통통한 레몬, 조개모양 틀에 넣으면 귀여운 조개가 나온다. 오늘의 틀은  귀여운 조개모양으로 한다. 어갈 재료를 계량하고 순서대로 정렬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버터를 끓이기 시작한다. 버터를 갈색이 날 때까지 끓여 헤이즐넛 버터로 넣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반죽에 넣을 수 있는 온도까지 다시 낮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반죽이 익어버리고 또 낮아지면 분리가 된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붙잡고 버터도 끓여하고 온도계수시로 확인한다. 원하는 온도에 들어서면 섬세하면서도 빠른 손놀림으로 반죽과 버터가 하나가 되도록 휘퍼로 섞어준다. 잘 된 반죽은 휘퍼로 저으면 표면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이제 반은 완성이다. 이제 주머니에 넣어 2시간 이상 숙성시키기 위해 냉장고에 넣는다. 그동안 난장판이 된 싱크대 안의 담긴 조리도구를 세척한다. 요리는 정리까지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또한 최선을 다한다. 깔끔하게 정리한 작업대에 휘낭시에팬을 올리고 크림화된 버터를 칠해 코팅을 해둔다.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오븐을 예열하는 동안 짤주니를 야무지게 잡고서 틀 안에 반죽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너무 많이 넣어도 너무 적게 넣어도 안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개모양의 구움 과자를 위해선 80%만 팬에 채워야 한다. 팔근육이 오랜만에 제대로 일을 한다. 오븐 예열은 끝났고 드디어 들어간다. 타이머를 맞추고 스타트! 구워지는 시간은 13분. 이 시간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타이머가 있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오븐 유리문을 통해 반죽이 서서히 조금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본다. 향기도 점점 짙어진다. 납작했던 마음도 같이 부풀어 오른다. 온 집안에 달콤한 향기가 가득하고 내 마음에도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찬다. 설레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타이머가 울렸다!


 (두근두근) 제대로 만들어졌을까? 오븐이 열리고 달콤한 버터향이 나를 먼저 감싸고, 귀엽게 배꼽을 보이며 멋스러운 브라운 옷을 입고 나온다. '와~,꺄~귀여워~맛있겠다!' 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만 감탄사를 연발한다. 뜨겁지만 식힘망에 올려두고 귀여운 자태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음식은 뜨거울 때가 맛있다고 했지!' 제일 이쁘고, 귀엽고 멋스러운 브라운컬러를 뽐내는 것으로 하나 골라서 과감히 반으로 쪼갠다. 김이 모락모락! 달콤한 버터향이 먼저 훅 들어온다. 아~~ 하고 입에 넣고서 또 한 번 감탄!(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다!) 겉은 바삭, 안은  쫀득한 식감! 완벽한 디저트가 있으니 아껴두었던 홍차를 내려야겠다. 홍차를 우리는 동안 이미 두 개가 입안으로 사라진다. 이쁜 꽃무늬 접시에 옮겨 담고 홍차를 따른다. '아~이게 행복이지 뭐 있나!' 엉켜있던 생각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생각은 단순해지고 부풀어진 반죽처럼 마음에 공간이 생기니, 그만큼 나도 함께 커진다. 요리를 할 때마다 여러 재료가 모여 하나의 요리가 만들어지듯이, 나의 생각들정리고 또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낸다.(다음에는 어떤 메뉴를 만들까?)



  

오늘 휘낭시에는 유독 더욱 잘 구워진 것 같다. 언제나 나의 요리에 엄지 척을 올려주는 지인이 생각난다. 가까이 있으면 나의 귀여운 조개모양 구움 과자를 자랑하며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너무 멀다. 내일은 이 아쉬운 마음과 달콤한 나의 마음 담아 택배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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